오늘은 나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한 콘텐츠다. 이제 슬슬 봄이 오는 게 느껴진다. 부슬부슬 내리는 비로 땅도 촉촉해졌다. 그러자 우리 집 막내아들이자 진돗개인 빙고가 아침 점심 저녁을 가리지 않고 산책 때마다 땅을 파헤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가리지 않고 언제나 땅을 파헤치지만 유달리 봄이 되면 유난스럽게 자주, 깊게 땅을 판다. 사계절 중에서 겨울에는 그나마 땅을 덜 파고, 봄은 유달리 땅을 많이 파서 눈에 띄는 차이에 더 유난스럽게 느껴지는 것 같다.
뒷 발로 단단히 몸을 지지하고 앞 발 두 개로 무아지경 땅을 파면 1분도 안 돼서 머리 하나가 들어갈 만큼 깊은 굴을 만든다. 옆에서 보고 있으면 신난 궁둥이와 앞발, 흙이 잔뜩 묻어서 갈색이 된 코가 우습다. 우습긴 우스운데 대체 왜 그러는 거야? 하는 궁금증을 지울 수가 없다. 그래서 오늘은 강아지가 땅을 파는 이유를 전격 해부해 보려고 한다.
1. 사냥 본능
강아지가 땅을 파는 행동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주요한 이유가 사냥이다. 개는 땅을 파서 땅속에 사는 들쥐, 두더지 같은 동물들을 사냥했다. 살아남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행위기에 여전히 본능에 새겨져 있는 것이다. 실제로 빙고는 땅을 파서 땅쥐나 두더지를 수십 마리 사냥해 온다. 내 눈에는 대체 어디에 두더지나 땅쥐가 숨어 있는지 전혀 보이지 않지만 빙고는 움직임을 파악하는데 특화된 눈과, 인간보다 1만 배 이상 뛰어난 후각으로 찾아낸다. 빙고가 파헤친 땅을 옆에서 슬쩍 들여다보면 정말 두더지가 지나가는 굴이 보인다. 빙고가 땅을 파는 이유는 이 사냥 본능이 확실하다. 늘 사냥에 성공하거나, 두더지 굴이 보이는 건 아니지만 말이다.
2. 집짓기
야생의 개는 땅굴을 파 안전한 집을 만든다. 굴을 만들어서 그 속에 숨어 천적을 피하고, 먹고, 자고, 새끼를 키운다. 여전히 이 습성이 남아 안전한 공간을 확보하고자 하는 본능에 땅을 판다. 그래서 땅뿐만 아니라 잠들기 전에 이불이나 방석을 긁는 이유도 안정감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한 행동이다. 너무 넓은 켄넬이나 집에서 안정감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도 이렇게 땅굴을 만들어 생활했기 때문이다.
3. 영역표시
강아지는 발바닥에서도 체취가 분비된다. 바닥을 긁거나 땅을 파면서 자신의 체취를 묻혀 이 공간이 자신의 영역임을 알릴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공간에 새로운 동물이 들어왔을 때 이렇게 땅을 파는 행동이 심해지는 경우도 있다.
4. 스트레스
강아지는 목욕, 빗질, 양치, 환경 등 수많은 이유로 스트레스를 받는다. 또 스트레스를 풀거나 표출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꼬리를 물거나, 미친 듯이 달린다거나, 마킹을 하거나, 앞 발을 핥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된다. 땅파기 역시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행동인 경우도 있다. 비가 너무 많이 와 산책을 못 갔다거나, 갑자기 환경이 바뀌었다거나 최근에 변화한 게 있다면 강아지가 무엇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원인을 추측해 해소해 주는 것이 좋다. 놀이나 산책으로 해소되는 경우가 많으니 강아지가 무료함을 느끼지 않도록 해보자.
5. 더위
무더운 여름에는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 땅을 판다. 개는 기본적으로 사람보다 체온이 높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정도 땅을 파내고 몸을 가져다 대면 훨씬 시원하다. 만약 강아지가 실내에서 땅을 판다면 강아지가 더위를 느끼고 있어서 일지도 모른다. 땅을 파고 배를 가져다 대고 엎드리는 행동을 보인다면 공간을 시원하게 환기시키거나 시원한 쿨매트 등을 깔아주면 좋다.
6. 보물 창고
강아지도 다람쥐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간식이나 장난감을 숨겨놓고 싶어 한다. 다른 동물들이 내 간식을 훔쳐가지 않도록 숨기는 것이다. 그렇게 간식이나 장난감을 땅에 묻어 두고 이따금 꺼내 먹거나, 가지고 노는 것이다.
7. 두려움을 느낄 때
야생의 개는 천적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땅굴을 만든다. 그렇기 때문에 두려움을 느낄 때도 자신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땅을 판다. 땅을 파서 자신의 몸을 안전하게 보호할 공간을 마련하고자 하는 행동이다.
8. 지루함을 느낄 때
반드시 사냥이 목적이 아니더라도, 오로지 재미만을 위해서 땅을 팔 수도 있다. 두더지나 땅쥐가 아니더라도 땅속은 수많은 지렁이와 벌레들이 살아 숨 쉬는 흥미로운 곳이다. 아이들도 어른이 보기에는 무의미해 보이는 놀이를 수백 번 반복하면서 즐거워한다. 강아지들도 땅을 파며 이유 없이 즐거움을 느낀다. 특히 기운이 넘치는 강아지들은 땅을 파면서 쌓인 에너지를 분출하니 말리기보다는 충분히 땅을 파며 즐길 시간을 주면 좋다.
9. 출산이 다가올 때
개들은 구석진 땅굴에서 새끼를 키우는 것이 본능에 새겨져 있다. 출산이 임박해 오면 새끼들을 안전한 곳에서 낳고 키우기 위해 구석진 곳을 찾고, 땅을 판다. 새끼를 키우기에 안전한 곳을 찾는 본능적인 행위다.
10. 공간이 불안할 때
이 공간이 불안해서 다른 공간으로 가고 싶을 때도 땅을 팔 수 있다. 울타리 근처의 땅을 파, 길을 만들어 탈출하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이때는 강아지가 통과할 만큼 땅이 파이지 않는지 지켜보아야 한다. 또는 반려견 혼자서 집을 지키는 시간이 길어졌을 때 혼자 있고 싶지 않을 때도 땅을 팔 수 있다.
대부분은 늑대이던 시절에서부터 새겨진 생존 본능에 의한 행동이다. 특별히 우려해야 하는 것이 없다면 강아지의 행동을 이해해 주고 즐겁게 땅을 파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좋다. 대체로 땅을 파는 행위 자체가 즐겁거나 스스로 가지고 있는 불편함을 해소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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