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트에서 음식을 살 때 유통기한이 가장 조금만 남은 걸 고른다. 할인의 여부와는 관계없다. 라면이나 과자, 통조림처럼 유통기한이 긴 식품을 고를 때는 오히려 고민 없이 고른다. 하지만 우유나 두부처럼 유통기한이 짧은 음식들을 고를 때 나는 유통기한이 가장 조금만 남은 걸 고른다. 왜 이렇게 바보 같은 소비를 하느냐고? 진짜 현명한 소비가 뭔지 함께 고민해 보면 좋겠다.
현명한 장보기라는 착각
"제조일자를 확인하세요." 한 우유 브랜드가 내세우는 광고다. 갓 만든 우유일수록 신선하고 맛있다는 걸 강조하려고 내세운 마케팅 문구다. 제조일자가 가까울수록, 유통기한이 길게 남을수록 신선하고 좋은 음식 같다. 보통 장을 보러 가는 사람들도 내 냉장고 안만 고민한다. 마트에 진열된 음식은 내 냉장고의 밖이다. 우유팩을 하나하나 다 뒤집어 제조일자를 확인해 보며 굳이 가장 안쪽에 있는 신선한 우유를 꺼내서 구매한다. 그렇게 가장 유통기한이 길게 남은 우유를 구매하면 알뜰하고 현명하게 장을 본 것 같다.
나도 그랬다. 유통기한이 짧게 남은 음식을 구매할 때는 30% 할인 딱지가 붙었을 때뿐이었다. 유통기한이 임박한 상품과 유통기한이 길게 남은 상품이 나란히 있다면 사람들이 유통기한이 임박한 상품을 구매하지 않는다. 대폭 할인을 해야만 구매한다. 나도 싸게 한 끼를 해결하고 싶은 때만 유통기한이 임박한 상품을 먹고, 제 값을 주고 살 때는 반드시 유통기한이 길게 남은 걸 구매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말 이게 현명한 걸까?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건 이게 전부일까?
우리의 냉장고
음식을 살 때 유통기한을 신경 쓰는 이유가 뭘까? 그 음식을 버리고 싶지 않아서다. 그래서 유통기한이 가장 긴 음식을 사 와서 냉장고에 채워 넣는다. 하지만 정말로 내 냉장고 안의 유통기한만 중요할까? 내가 유통기한이 가장 긴 음식을 사는 바람에 유통기한이 짧게 남은 음식이 팔리지 않는다면 그 음식은 결국 버려진다. 내 냉장고는 내 냉장고에 불과하지만, 마트의 냉장고는 우리의 냉장고다. 이 마트에서 팔리지 않은 음식은 결국 버려지고, 환경을 오염시킨다.
나는 마트에 있는 음식은 남의 것, 돈 주고 산 것만 내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마트에 있는 것도 지구를 함께 쓰는 우리 모두의 것이다.
이 음식을 사서 오늘 먹을 거라면 유통기한이 3일 뒤든, 5일 뒤든 상관이 없다. 그런데 왜 나는 유통기한을 고집했을까? 우리의 냉장고인 마트에 있는 음식 중에 가장 빨리 먹어야 하는 음식을 구매해서 먹으면 이 음식은 버려질 위기에서 해방되는데.
나의 냉장고는 마트의 냉장고보다 자유로운 곳이다. 유통기한이 지났다고 해서 당장 버릴 필요는 없다. 상하지 않았다면 비록 며칠이 지났더라도 먹을 수 있다. 반대로 내가 고작 유통기한이 3일 더 넉넉한 음식을 샀다고 해서 그날에 맞춰서 먹거나, 절대 상하지 않는 게 아니다. 유통기한과 관계없이 오늘 먹을 음식은 오늘 먹고, 썩을 음식은 내가 모르는 사이에 썩는다.
그렇다면 나는 고작 하루 이틀 더 유통기한이 긴 음식을 고집하지 않아도 되는 게 아닐까? 아니, 반대로 유통기한이 짧은 음식을 고집해야 하는 게 아닐까? 우리의 지구를 위해 유통기한이 임박한 음식이 버려지지 않도록 이 녀석들을 빨리 자유로운 나의 냉장고로 데려와서 하루 이틀 생명을 연장시키고 버려지지 않게 먹어치우면 되는 게 아닐까?
그래서 나는 마트에서 장을 볼 때 우리의 냉장고에서 빨리 먹어야 하는 음식이 뭔지 눈여겨보며 유통기한이 임박한 음식을 고른다. 먹기 싫은 걸 억지로 먹는다는 게 아니다. 내가 먹고 싶은 음식 중에서 어떤 녀석들이 빨리 자유로운 내 냉장고로 이사 와야 하는 음식인지 골라본다. 그리고 빨리 먹어야 하는 음식은 오늘의 식탁에 올리거나 바로 냉동을 시켜두고 천천히 꺼내 먹는다. 마트에 있었다면 버려질지도 모를 음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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