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평생 만나온 사람이 할머니와 할아버지다. 특히 친가의 할머니 할아버지는 나를 키우다시피 하셨다. 평생 만나온 사람이지만 내가 할머니 할아버지에 대해서 뭘 알까? 하고 돌아보면 아는 게 전혀 없다. 이름 조차도 제대로 못 외우는 손자 손녀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한테 할머니 할아버지는 이름으로 부르는 대상이 아니니까. 할머니는 할머니고,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니까. 내 아빠의 엄마 아빠라는 거 말고 내가 아는 게 뭘까. 우연히 아빠에게 할머니,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지만 아주 작은 조각들이 파편적으로 흩어져있을 뿐이다.
지금 내가 물어봐놓지 않으면, 할머니 할아버지의 삶은 세상에 없었던 게 될 수도 있다. 마케팅에는 그런 말이 있다. 검색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거라고. 노인 한 사람이 사라지는 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지는 일과도 같다는데 누군가 그 삶을 기록해놓지 않으면 그 삶은 그래도 사라진다. 그래서 아빠한테 물어볼 수 있을 때 뭐라도, 하나라도 물어봐놓고 싶었다.
그래서 오늘 저녁에는 아빠한테 할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셨는지 물어봤다. 할머니가 무슨 일을 하셨는지는 어렴풋이 들었는데 할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셨는지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참 이렇다. 내 삶을 사는데 바빠서 할아버지의 젊은 날, 아빠의 어린 날에 대해서 물어보지 않는다. 아빠도 현재를 사는데 충실해서 자신의 어린 날, 할아버지의 젊은 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게 쉽지 않다.
할아버지는 막내 아들로 태어나셨다. 옛날에는 장남에게 모든 재산을 물려줬기에 할아버지는 안 그래도 적은 재산에서 10원 한 푼 물려받지 못하고 할머니와 함께 몸만 들고 부산에 가셨다. 시골에는 일이 아예 없었기에 입에 풀칠이라도 하기 위해서 부산으로 갔다. 하지만 부산에서도 특별히 일거리가 있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당시 양산에서 꽤나 자리를 잡고 계셨던 할머니의 오빠인 큰할아버지가 할머니와 할아버지를 양산으로 부르셨다. 그렇게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양산에서 아무것도 없이 시작해 3층짜리 건물 하나 가진 어른이 될 수 있었다. 나는 그 3층짜리 건물에서 자랐다. 할아버지가 일군 전부인 그 건물에서 아무것도 모르고 천방지축 어린 시절을 보냈다.
할아버지는 양산에 와서 처음에는 회색 시멘트 벽돌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했다. 그 공장에 딸린 숙소에서 먹고 자면서 일을 했다. 할머니는 식당을 하면서 세 아들을 키웠다. 아빠가 초등학생 즈음 시기였다. 그 이후로 할아버지는 종이를 만드는 회사의 보일러실에 취직해서 정년퇴직까지 일을 하셨다.
보일러실 일은 3교대였다. 때로는 아침에 출근하고, 때로는 낮에 출근하고, 때로는 밤에 출근해야 했다. 때로는 밤에 잠을 잤지만, 때로는 낮에 잠을 자야했다. 할아버지가 낮에 잠을 자는 날에는 온 가족이 숨을 죽여야 했다고 한다. 아빠는 동생과 함께 작은 방에 들어가 쥐죽은 듯이 있어야 했다. 그때는 방 마다 티비가 있지 않았으니 가끔 너무 보고싶은 방송이 있을때는 볼륨을 최대한 낮추고 잠든 할아버지 옆에서 티비를 봤다. 그렇게 소리를 한껏 낮추고 티비를 볼때는 뭐라고 혼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그렇게 3교대로 일을 하면서도 소를 키우셨다. 50평 남짓되는 밭을 빌려서 텃밭도 가꿨다. 소를 키우기 위해서는 옥수수나 짚이 필요했다. 때로는 밭을 갈아주는 대가로 짚을 받기도 했다. 아빠도 초등학교를 다닐 때 소 풀을 먹이고 학교에 등교하고, 소 풀을 먹이기 위해서 뛰어서 하교하곤 했다고 한다.
그렇게 할아버지는 소를 키우고, 3교대로 정년퇴직 때까지 일을 하면서 세아들을 키우셨다. 할머니는 아빠가 초등학교 저학년 즈음에는 식당을 하셨지만 그 이후로는 슈퍼만 운영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틈이 나면 밖에서 일을 하곤 하셨다. 어떻게 그렇게 일하면서 세 아들을 아니 할아버지까지 넷을 키우셨을까?
할아버지는 엄마를 처음 만난 날 엄마에게 "죽을 각오로 살라"고 하셨다고 한다. 엄마는 처음 만난 자리에서 이런 말을 들을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에 당황했지만 이런 이야기를 듣고 나니 할아버지의 말이 이해된다며 웃었다.
옛날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늘 내 삶이 얼마나 축복같고, 평안하고, 방탕한지 깨닫는다. 그 시절의 사람들에게 나와 같은 인권 감수성 같은 것들을 요구하는게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도 깨닫게 된다. 내 삶이 그들의 손으로 빚어졌고, 내 삶이 그들의 것인 것에 더 가까운데 내 기준에 맞추길 바라는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가 싶어진다.
아빠는 들을때마다 사고뭉치였던 스토리를 들려준다. 오늘은 염소에 받혀서 날라간 이후로 트라우마가 생겨서 한동안 염소만 보면 겁이 났다는 이야기와, 개한테 물려서 팔에 구멍이 났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엄마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아빠같은 아들은 절대 못 키운다고 하고, 나는 어떻게 아빠가 지금까지 이렇게 멀쩡히 살아있을까 의문을 가진다. 정말 이렇게 우당탕탕 기막한 삶을 산 사람이 이렇게 조용한 캐릭터로 살아온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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