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은 일정이 없는 주말에는 다같이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시간을 가진다. 주로 사회문제를 다루는 다큐멘터리를 보는데, 그 중 환경문제와 관련된 다큐멘터리를 가장 많이 고른다. 가족들이 다같이 보기에 좋은 환경 관련 다큐멘터리를 추천하고 싶어서 3개를 가져왔다. 다큐멘터리는 특히 혼자 보는 것보다 가족들과 함께 보는 게 좋은 것 같다. 가벼운 영화나 드라마와는 다르게 보기 전과 본 후의 삶이 달라지게 만드는 요소들이 많기 때문이다. 나의 변화에 대한 맥락을 가족들이 함께 공유할 때, 그리고 가족들이 다함께 변화를 도모할 때 훨씬 효과적이다. 이번 주말에는 아래의 다큐멘터리 중 한 편을 가족들과 함께 시청해 보는 건 어떨까?
씨스피라시
내가 가장 충격받은 환경 관련 다큐멘터리를 하나 꼽으라면 단연코 씨스피라시다. 2021년에 개봉한 영화로 바다와 어업에 관해 촬영한 다큐멘터리다. 다큐멘터리를 만든 알리는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이다. 알리는 사랑하는 바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만들고자 했으나, 그가 마주한 바다는 충격적인 참극이 벌어지는 곳이었다.
축산업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바가 있었지만 바다에 대해서는 이렇게나 무지했다. 물 위에 대해서는 일상적으로 보고, 알고 있지만 물속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전혀 몰랐다.
물고기를 잡기 위한 그물에 물고기만 잡힐 리가 없다는 걸 왜 몰랐을까. 손바닥 만한 물고기도 잡히는 그물이라면, 커다란 돌고래와 상어는 당연히 잡힌다. 그리고 인간은 물고기는 잡고 돌고래는 놓아주지 않는다. 모두 공평하게 처참히 죽임 당한다. 그리고 비행기가 10대 들어갈 크기의 그물을 그대로 바다에 버린다. 이 어마어마한 크기의 어망은 그대로 바다에 가라앉아서 다른 해양 동물을 괴롭힌다. 그리고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바닷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모른다.
나는 소고기 보다는 돼지고기, 돼지고기보다는 닭고기, 닭고기보다는 물고기가 낫다고 막연히 생각해 왔다. 아니, 틀렸다. 물고기는 결코 소, 돼지, 닭고기의 대안이 될 수 없다.
나는 나무만 이산화탄소를 산소로 바꾼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바다는 그보다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로 내뿜고 있었다. 내가 모조리 틀렸다. 물고기를 먹는 건 무엇의 대안도 될 수 없었다. 눈에 보이지 않기에 몰랐고, 몰랐기에 놀랐다. 내가 본 다큐멘터리 중 가장 나를 흔드는 다큐멘터리였다. 이런 충격은 받아 마땅하다. 이 긍정적인 충격을 모두가 함께 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
카우스피라시
카우스피라시는 소(카우)와 음모(스피라스)를 합쳐 만들어진 제목의 다큐멘터리다. 2014년에 나온 다큐멘터리로, 씨스피라시보다 먼저 나온 다큐멘터리다. 하지만 씨스피라시를 본 사람들은 많아도 카우스피라시를 본 사람은 많지 않다. 나도 씨스피라시를 먼저 시청하고 2년쯤 흐른 뒤 카우스피라시를 봤다.
가족들과 매주 주말 마다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는 날을 만들었고, 이번주의 다큐멘터리로 카우스피라시를 제안했기 때문이었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다시 씨스피라시를 봤을 때의 충격을 느꼈다. 축산업이 환경에 좋지 않다는 걸 막연히 알고는 있지만 대체 왜, 얼마나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수치로 봤을 때는 이전과는 다르게 피부에 와닿는다.
나도 물을 받아놓고 샤워하고, 설거지를 할 때마다 죄책감을 느끼면서 살아왔다. 하지만 햄버거 하나가 2,500L의 물을 사용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니. 이런 걸 상상이나 해본 사람이 있을까? 매일 양치컵을 사용하는 것보다 햄버거 하나를 덜 먹는 게 5000배도 넘는 물을 절약할 수 있는 일이라니.
아보카도를 키우기 위해 물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아보카도를 먹지 말아야 한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물을 절약하기 위해서 고기가 들어간 샌드위치에서 아보카도만 빼는 사람도 봤다. 정말 이렇게 헛웃음이 나는 위선이 있을까? 나는 이런 순간을 맞을 때마다 내가 트루먼쇼에 들어와 있는 건 아닐까 싶어 진다.
더 게임 체인저스
주말에 카우스피라시를 보고 난 다음날. 아빠가 식탁에서 다음 다큐멘터리는 '더 게임 체인저스'가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제목만 들었을 때는 예능 프로그램인가 했지만, 대략적인 설명을 듣고는 곧바로 다음 다큐멘터리로 정해졌다.
더 게임 체인저스는 슈퍼맨이 되고 싶었던 주인공 제임스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어릴 때부터 가라테를 배우다 10살에 폭행을 당하고 가라테는 실제 호신을 위해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는다. 그렇게 그는 주짓수, 격투기 등 호신 무술을 익히기 시작한다. 그리고 격투기 종목에서 챔피언 메달을 따낸다. 하지만 얼마 뒤 연습 경기를 하다가 양 쪽 무릎에 큰 부상을 당하게 된다. 6개월 간 제대로 훈련도 할 수 없을 정도의 부상이었다. 제임스는 빠르고, 완벽한 회복을 위해서 영양학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한다. '대체 무엇을 먹어야 할까.'를 파고들기 시작한다. 닥치는 대로 수많은 정보들을 모은다.
그러던 중 로마의 검투사들이 콩과 보리를 주식으로 하는 채식주의자였다는 연구 결과를 접한다. 그리고 비건식을 하면서 올림픽 메달을 딴 선수들에 대한 정보가 하나하나 그의 손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고기는 곧 힘이라고 믿어온 그의 신념과 반대되는 정보들에 혼란스러운 제임스는 현역에서 활동하는 채식주의자 선수들을 찾아 나서기 시작한다.
그리고 비건식을 하는 선수들은 하나같이 비건식을 시작하고 난 뒤부터 체력이 좋아지고, 기량이 올라갔다며 왜 진작에 채식을 시작하지 않았을까. 하는 경험담을 전해준다. 35세에 최고령자로 사이클 경기에서 메달을 딴 채식주의자 도치 바우슈는 비건식을 하면서 체력과 실력이 더 좋아져 다음 올림픽에도 나갈 수밖에 없다며 크게 웃는다.
하지만 제임스는 격투기 선수다. 기량도 중요하지만 지금까지 만난 비건 올림픽리스트들은 전부 마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비건이면서도 큰 덩치를 유지하는 사람을 찾아 나선다. 그렇게 세상에서 가장 강한 남자 파트리크를 만난다. 파트리크는 550kg을 들어 올린 세계 신기록을 가지고 있는 선수다. 그는 비건을 시작하고 100킬로대에서 130킬로 대가 됐다. 그는 말한다. "사람들이 고기도 안 먹고 어떻게 그렇게 황소처럼 힘이 세냐고 물어요. 저는 이렇게 답합니다. 황소가 고기 먹는 거 봤어요?"
이 모든 사례를 눈으로 직접 본 제임스는 전문가를 찾아 나선다. 고기가 우리의 몸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고기에는 단백질이 있다. 하지만 고기의 단백질은 몸에 염증을 일으킨다. 하지만 식물에 있는 단백질은 우리 몸에 염증을 없앤다. 식물로 단백질을 얻을 수 없다는 건 착각이다. 닭도, 돼지도, 소도 식물에서 단백질을 얻는다. 우리는 소, 돼지, 닭을 거치지 않았을 때 오히려 훨씬 질 높고 많은 단백질을 얻을 수 있다.
운동과 식이에 대한 관심이 지금보다 높았던 때가 없었다. 키토식이 유행하면서 고기만 먹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이때 꼭 시청해야 할 다큐멘터리가 아닐까 싶다. 한쪽의 정보만 얻지 말고, 반드시 양쪽의 정보를 모두 취하고 자신의 식이를 선택해야 한다. 나도 건강을 이유로 탄수화물을 줄이고, 고기를 주단백질 원으로 삼아왔다. 그리고 나는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내가 어리석었다는 사실을 겸허히 인정하게 됐다. 더 이상 나를 위해서, 지구를 위해서 고기를 주식으로 선택하지 않고 싶다.
제임스가 비건식 관련 비즈니스를 시작했다며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그게 정보의 정확성이나 진실성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하다못해 편향된 정보면 어떤가. 우리는 그동안 축산업이 돈을 가져다 바친 편향된 정보만 평생 얻어왔는데. 다큐멘터리 하나가 비건에 편향된 정보를 싣고 있다고 왜 갑자기 분노하면서 균형을 요구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그동안 축산업을 권장하고 방송과 정보들에 먼저 분노하는 게 제대로 된 균형감 아닐까.
카우스피라시와 더 게임 체인저스를 순서대로 본 건 정말 좋은 선택이었다. 사람은 이기적이다. 이타적인 마음만 가지고는 채식 중심 식단을 시작하기 어렵다. 하지만 채식을 시작하는 게 나를 위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되면 훨씬 가볍고 쉽게 시작할 수 있을 거다. 카우스피라시와 더 게임 체인저스를 꼭 함께 보길 권한다. 하나만 봐야 한다면 더 게임 체인저스만 봐도 좋다. 먹을 거라면 차라리 알고 먹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멋진 다큐멘터리를 어디서나 볼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다. 환경을 위한 한 발자국을 떼기 망설이는 사람들의 뒤에서 등을 톡 밀어주는 다큐멘터리들을 만들어준 사람들에게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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