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1월 1일. 이제 발뺌도 할 수 없게 새해가 되어버렸다. 다들 어떤 설날을 맞이했는지 궁금하다. 나는 이번 설날에 특별한 경험을 했다. 고모인 나의 엄마와 함께 4살짜리 사촌동생(후후)의 손을 잡고 놀이터에 가서 신나게 놀아주고 출발하는 길에 벌어진 마법 같은 일이다. 꺄아 소리를 지르면서 미끄럼틀을 신나게 타고 노는 모습을 보면서 집에 가기 싫다고 떼쓰겠거니 하며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이제 집에 가는 거야"하는 고모의 말에 한 마디 불평 없이 손을 툭툭 털고 일어나 집으로 향하는 거다. 대체 이게 무슨 마법이지? 사촌동생이 유달리 착하고 천사 같은 아이인가?
정답은 유치원 선생님인 우리 엄마, 고모에게 있었다. 오늘은 설날 특별편으로 이 고모가 대체 어떤 마법을 부렸는지 들려드리겠다.
1. 아이에게 이유를 알려준다.
(나의)엄마는 휴대폰을 꺼내 사촌동생의 엄마, 아빠에게서 전화받는 척을 하기 시작했다. "네 후후 엄마 아빠~ 후후 이제 집에 오라고요? 네 우리 미끄럼틀 딱 5번만 타고 집에 갈게요~" 걸려 오지도, 걸지도 않은 전화를 끊은 엄마는 후후에게 이렇게 말했다. "후후야. 엄마 아빠가 이제 집에 오래. 그래서 고모가 딱 다섯 번만 미끄럼틀 더 타고 집에 간다고 했어. 우리 딱 다섯 번만 미끄럼틀 더 타고 가자." 후후가 다섯 번이 몇 번인지 알아들을까? 의문이었지만 한 번 미끄럼틀을 탈 때마다 한 번~ 두 번~ 세 번~ 하면서 횟수를 알려줬다. 다섯 번째가 되자 그래도 한 번만 더 타고 가겠다고 하겠지? 하면서 내가 괜스레 더 긴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섯 번째가 되자 후후는 손을 탈탈 털고 일어나 뒤도 안 돌아보고 집으로 향했다.
2. 아이에게 마음의 준비할 시간을 준다.
나는 집에 돌아와서 사촌동생이 이렇게 말 잘들고 순한지 몰랐다고 깜짝 놀라 이야기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나도, 후후도 이 유치원 선생님의 손바닥 위에 있었다. 모든 건 유치원 선생님의 노하우였다.
신나게 노는 아이에게 갑자기 모든 걸 중단하고 "자, 놀만큼 놀았으니 이제 집에 가자"라고 하는 건 받아들이기 힘든 일이다. 아이에게도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그렇게 다섯 번이라는 제한을 주는 것이다. 다섯 번 미끄럼틀을 돌면서 아이는 놀이터를 떠나 집으로 갈 마음의 준비를 한다.
3. 아이의 컨디션은 부모가 조절한다.
그렇다면 아이가 지쳐서 나가떨어질때까지 놀게 하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아이가 신나게 논다고 해서 무한정 아이를 놀려서는 안 된다. 아이는 스스로의 컨디션을 조절할 수 없다. 다 큰 성인이 돼서도 식습관과 과도한 업무량, 수면습관 등이 조절되지 않는데 아이가 스스로 놀만큼 놀면 알아서 돌아올 수 있을 리가 없다. 부모가 조절하지 않으면 아이는 지칠 때까지 논다. 지치면 예민해지고 부모가 지켜보지 못하는 유치원에서 모두 드러난다. 선생님에게 투정을 부리고, 친구들을 때리거나 밀치고, 물건을 집어던지거나 소리를 지르고, 수업에 집중을 못한다.
적당히 놀면 집에 돌아오고, 낮잠을 자고,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 간식을 먹는다. 그리고 놀고, 밥을 먹고, 잠을 잔다. 에너지를 보충하면 쓰고, 쓰면 보충한다. 아이는 매일 같은 시간에 놀이를 하고 낮잠을 자고 간식을 먹는 게 좋다.
맞벌이 부모든, 아니든 평일에 온 가족이 모여서 아이를 놀아주는 건 어렵다. 그리고 아이를 놀아주지 못하는 부모는 주말마다 아이에게 특별한 기억을 만들어 주고 싶어한다. 하지만 주말마다 기력을 소진한 아이는 평일에 산만한 아이가 된다.
평일에 일하고 지친 직장인이 쉬어야 하는 것처럼 아이도 쉬어야 한다. 아이도 유치원에서 선생님에게 잘보이고 싶고, 친구들과 잘 지내고 싶어 긴장하고 애를 쓴다. 어른보다 더 정글 같고 날 것일 그 사회에서 아이도 지친다. 혹은 유치원 생활과 비슷한 하루를 보내는 게 좋다. 제때 놀고, 제때 낮잠을 자고, 제때 밥을 먹어야 아이는 정서적으로 차분하고 안정된 모습을 보인다. 보통 사랑이 과해서 문제가 생긴다. 과함은 모자람만 못하다. 정말 인생은 과유불급이다.
나의 엄마는 종종 나에게 "너를 키울때는 그걸 몰랐어. 미안해." 하고 말한다. 나는 엄마 아빠 딸로 태어나는데 운을 다 썼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쓸데없는 사과라 생각하지만 엄마는 다 큰 딸을 보면서도 여전히 어릴 때 잘못한 게 생각나는 모양이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 자식도 이런 사과를 들으면 가슴이 미어지니까. 자식에게 사과할 수 있는 사람은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누군가 한 사람이라도 사과할 일을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또 그저 한 어른의 지혜가 남았으면 좋겠다. 세상에 점점 괜찮은 어른이 없어져 가는 것 같고, 그렇기에 어른의 말을 귀담아 듣는 사람들도 없어져 간다. 나는 운 좋게 지혜를 구할 어른들을 많이 만났다. 할머니 한 분이 돌아가시는 건 도서관 한 채가 사라지는 것과 같다는 말에 동의한다. 삶 굽이 굽이 깊이 팬 주름을 따라서 고여있는 지혜를 다 담지는 못하겠지만 한 줄이라도 기록해 남기고 싶다. (나의 엄마가 주름이 많다는 의미는 아니다. 엄마는 작고 귀여운 절대 동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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