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할 때는 반드시 자동화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특히 매일 루틴하게 반복하는 업무들 중 자동화시킬 수 있는 것이 없는지 점검하는 건 업무 효율을 올리는 데 매우 필요하다. 하지만 나는 내 삶에서 이 자동화를 적용시켜 놓는 부분이 있다. 바로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 선한 영향력을 자동화시킨다는 게 도통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해도 부디 이 글의 끝까지 따라와 주시길. 나는 나의 가치관과 약간의 게으름 사이에서 태어난 이 자동화 시스템이 스스로 아주 만족스러우니까.
나는 거창한 삶의 목표는 없지만 다만 내가 태어난 지구가 태어나지 않은 지구보다 조금, 아주 조금만이라도 더 좋은 곳이되면 좋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관점에 따라 가장 거창한 꿈이 될 수도 있겠다.)
나를 구성하는 가치관이자 내가 삶에서 꼭 지키고 싶은 것, 인생에서 줄곧 화두로 올리고 있는 문제는 환경, 동물권, 인권 문제다. 나는 삶에서 이 세 가지 문제로 가장 가슴을 많이 앓는다. 나를 가장 아프게 하는 세 가지다. 그래서 나는 이 세가지를 위해서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죄책감에 빠진다. 누구도 나에게 지우지 않았지만 스스로 지구의 구성원으로서, 동물의 살 곳을 빼앗은 인간으로서, 또 같은 사람으로서 부채감을 느낀다.
하지만 늘 플로깅을 한다거나, 유기견 센터를 청소하러 간다거나, 오프라인 시위에 참여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죄책감을 느낀다. 이 괴로운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나는 내 삶에 선한 영향력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했다. 내가 일상을 살기만 해도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도록 내 삶을 꾸려놓는 것이다.
1. 첫번째 자동화 : 나는 돈 벌면서 환경운동 한다.
나는 친환경 제품을 만드는 회사에 입사했다. 원래부터 플라스틱을 대체하기 위해 찾아서 쓰던 제품의 회사였기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지원했다. 그렇게 3년째 이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내가 일을 잘해서 제품이 많이 팔리면 그만큼 세상의 플라스틱 쓰레기가 줄어드는 일이다. 나는 그렇게 하루에 8시간 꼬박꼬박 환경을 위한 일을 한다.
한 명 한 명이 일상에서 환경을 위한 움직임을 실천해 나가야 하는 것은 맞다. 하지만 개인이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해결책은 기업이 쥐고 있다. 기업 단위로, 기업의 방식으로 환경 문제를 해결해야 정말 유의미한 단위의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2. 두번째 자동화 : 막내 동생을 입양하다.
나는 유기견을 입양했다. 인스타그램에서 활발하게 입양 홍보를 하는 유기견 센터에 있는 강아지들도 있지만, 의무적으로 보고해 정보가 수집되는 포인핸드에만 올라오는 강아지들도 많다.
봉사자가 많은 유기견 센터에 있는 강아지들은 안락사가 몇 년씩 미뤄지고 결국 입양자를 찾게 되는 경우도 많지만, 그렇지 않은 유기견 센터는 도살장이나 다름없다. 신고에 의해 강아지가 잡혀 들어가면 딱 10일 뒤에 안락사된다. 내가 막내 동생을 입양한 유기견 센터가 바로 그런 곳이었다. 200마리 중 1마리가 살아서 나올까 말까 한 곳. 까만 털, 믹스견, 큰 덩치. 사람들이 입양하기 싫어하는 조건을 다 갖춘 이 강아지는 내가 아니면 죽을 게 분명했다.
이게 내 두번째 자동화였다. 이 녀석을 입양하자. 그리고 이 유기견을 위해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걸 다 해주자. 이 녀석을 먹여 살리고, 병원에 데리고 가고, 하루에 3번 산책시키는 일. 내가 모든 유기견의 삶을 바꿀 수는 없지만 이 한 녀석의 세상은 바꿀 수 있다는 걸 믿어보자. 그렇게 이 강아지를 입양해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면서 크고, 까만 시고르자브종 강아지의 매력을 알리기 위해 애쓰고 있다.(@bingo_nuna) 한 마리의 까만 강아지라도 더 살리는 일이 될 수 있으리라고 믿으며.
3. 세번째 자동화 : 기부
세번째가 가장 손쉬운 자동화다. 일시 후원도 당연히 좋지만 나는 정기후원을 한다. 그게 이 자동화 시스템의 포인트니까.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알아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도록 시스템을 만들어 놓는 것. 꼭 많은 금액이 아니어도 좋다. 그저 중간에 끊지 않고 매 달 꾸준히 조용히 통장에서 빠져나가게 두기만 하면 된다. 쌓이고 쌓여서 수십, 수백만 원이 되겠지만 매 달로 따지면 몇 만 원에 불과하다. 매 달 몇 만 원이 남는다고 해서 이보다 더 잘 쓸 자신이 나에게는 없다.
나는 총 세 곳에 기부를 한다. 내가 위에서 말한 환경, 동물, 인권을 기준으로 각 세 곳을 골랐다.
1) 그린피스
2) 동물해방물결
3) 유니세프
나는 삶에서 무언가를 선택할 때 언제나 이 세 가지를 기준으로 삼는다. 회사를 결정하는 것처럼 큰 선택부터 텀블러가 없다면 음료를 마시지 않기를 택하는 사소한 선택까지 늘 이 기준이 등장한다. 매 순간 자본주의는 나를 가치관의 반대편으로 유혹하기 때문에 실은 매 일상이 고군분투다. 그럼에도 더 잘 살기 위한 이 고군분투를 계속 해나가고 싶다. 그리고 이 자동화 시스템이 나에게 주는 안도감에 가끔은 몸을 맡기고 쉬기도 한다.
혹시 조금 나쁜 짓을 하더라도 용서받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면, 미리 미리 삶에 선한 영향력을 위한 자동화 시스템을 구축해 두는 것은 어떨까? 스스로를 덜 미워하는 데도, 더 좋아하게 되는데도 도움이 된다. 기부처럼 손쉬운 것부터 시작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 세상을 위한 일 같지만 하다 보면 나를 위한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될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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