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9일(금) 신주쿠에서 히로아키랑 11시 집합! 집에서 45분 거리를 10시에 출발했는데도 늦을까봐 발을 동동 굴렀다. 왜냐. 나는 길치 방향치니까. 일본은 왜인지 고층건물 많은 곳, 사람 많은 곳에 오면 지도가 정신을 못 차려서 늘 시간을 여유롭게 잡고 이동해야 한다. 그래도 다행히 11시 전에 신주쿠 마루이 백화점 앞에 도착했다! 분명 갈 때 히로아키를 못 봤는데 반대쪽으로 돌아보니까 히로아키가 손을 들고 있었다. 신기하군.
전 날 비가 오고, 오늘은 바람이 엄청 많이 분다는 예보가 있어서 조금 걱정했는데 100% 청명한 하늘! 역시 나는 날씨요정, 하레 온나!
신주쿠 후타바 후르츠 팔러 Futaba Fruits Parlor
입구에서 히로아키가 사진 찍고 들어가길래 나도 같이 사진 찍었다. 음식은 자리에 앉아서 QR코드로 주문하는 시스템! 음식은 세트메뉴로도, 단품으로도 주문이 가능하다. 식사류 중에는 카레만 비건 메뉴였다. 파르페는 두유로 옵션 변경이 가능한 시스템이었다.
우리는 비건 카레+과일 샐러드+아이스티 세트에, 두유 티라미수, 두유 과일 파르페를 추가로 주문했다. 나는 음료수를 그리 안 좋아해서 음료수는 너 마셔 하고 줬다. 그리고 일본인이랑 식사하는 건 처음이라 원래는 어떻게 먹는지 모르지만 내가 주문한 카레를 권하면서 먹어봐 한국은 음식 쉐어하는게 무척 자연스러운 문화야 했더니 잘 먹었다. 감자가 너무 커서 한 입에 못 먹고 스푼으로 조각내서 먹었는데 남은 조각도 먹을만큼 잘 먹음... 한국인보다 스스럼 없는 쉐어 뭔데요. 저 일본 문화를 잘 배우고 있는 것 맞나요? 일단 저는 감사합니다만... ㅋㅋㅋㅋㅋ
음식은 다 맛있었다! 비건으로도 이렇게 맛있게 만들 수 있는데 왜 안 만드는걸까? 다들 할 수 있으면서! 하며 아쉬워했다. 그리고 돌아와서 생각하는거지만 파르페를 비건 옵션으로 바꾸려면 +100엔의 추가금이 든다.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비건 옵션으로 바꿨을 때 가격이 저렴해지게 할 수는 없을까? 애초에 사람들이 비건 옵션을 선택하도록 유도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정부에서 지원하는 방향으로라도!!!
밥 먹으면서 비폭력 대화(NVC) 책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히로아키에게 보물이며 바이블 같은 책이라고 했다. 여기까지 오면서 두 번째 정독을 마친 참이라고 했다. 가장 좋았던 구절이 어디냐고 했더니 그 구절을 보여줬다. 정확히 의미를 전달하기 보다는 시적인 표현의 문장이라 이해하기가 어려워서 여러번 읽어봤다. 그리고 '요모야'의 의미가 이해가 안 가서 물어봤다. '혹시나, 설마' 같은 의미였는데 여기서는 아니겠지만, 그렇지 않은 걸 알지만 같은 느낌으로 쓰인 것 같았다. 눈으로 읽었을 때 더 어려워서 나중에 낭독해달라고 부탁했다.
사진은 E-book에서 좋았서 형광펜 표시를 해둔 구절을 발견해서 찍은 사진.
두 시간쯤 대화를 나누면서 밥을 먹은 것 같다. 1시쯤 식사를 마치고 히로아키가 이제 어디갈까? 하길래 어디 가고 싶은 곳 있어? 했더니 정하지 않았다고 하길래 공원으로 가자고 했다. 이렇게 축복받은 계절은 짧다고! 빠짝 즐겨둬야 해!
시부야 요요기 공원
거의 요요기 공원에 들어오자마자 보인 까마귀. 진짜 크다. 쟤 자기가 강하다는 걸 알고 있어. 하는 대화를 나누면서 걸었다. 밖으로 걸을까 안으로 들어갈까 하다가 가위바위보로 바깥은 돌기로 결정. 근데 목이 말라서 바깥은 돌다가 잠시 편의점을 다녀왔다.
그리고 음료를 사왔더니 눕고 싶어져서 공원의 한중간으로 왔다. 히로아키가 눕고 싶으면 공원 한중간으로 가는게 좋다고 했는데 한중간은 연못이라고 놀렸다. 후후. 구름 한 점 없는 쾌청한 날씨! 서 있으면 건물들이 보였지만, 누워 있으면 건물도 보이지 않아서 자연 한 중간에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
큰 나무 그늘에 앉아서 책 이야기를 나눴다. 인생에서 가장 큰 울림을 줬던 책들을 이야기했다. 히로아키는 3권의 책을 이야기해줬다. 플라톤의 존재론 부터 시작해서 마지막이 비폭력 대화인 NVC였다. 그 중 자신의 삶을 가장 많이 바꾼 책이 NVC라고 했다. 나는 한국 작가들의 책을 이야기해줬다.
더워서 그늘에 앉아있었더니 바람이 세게 불어 추워져서 다시 햇볕을 받으러 나와서 누웠다. 누워서 히로아키가 아까 읽어주기로 했던 구절을 읽어준다고 하길래 영상을 찍었다. 그리고 영상 찍으려니 듣는데 집중이 안 돼서 다시 한 번 읽어달라고 했다.
한참 누워있다가 추워져서 일어나서 다시 걷기로 했다. 천천히 걷다 갑자기 요요기공원의 의미를 깨달았다며 설명해줬다. 요요기 공원은 [代々木]이런 한자를 쓴다. 즉 대대로 이곳에 있는 나무들. 이라는 의미가 아닐까 하고 설명했다. 그러고 보니 이 공원에 있는 나무들은 다 어른 셋은 둘러싸야 겨우 둘레를 잴 수 있을만큼 큰 나무들이 많았다.
오늘분의 꽃들도 잔뜩 찍었다. 히로아키 사진도 무척 열심히 찍어줬다. 나는 친구들 만나면 늘 질 보다 양으로 승부하는 편이라 이번에도 여러 장 중에 한 장은 네 맘에 들겠지 하면서 찍어줬다.
요요기 하치만구 신사
요요기 공원에 들어가면서 근처에 신사가 있다는 걸 보고 시간이 되면 여기에 가자고 한 참이었다. 공원에서 이야기도 나누고 산책도 하고 저녁을 먹고 갈래 아니면 공원에 있다가 갈래? 하다가 모처럼 여기까지 왔으니 저녁을 먹자고 해서, 저녁 먹기 전에 잠시 시간이 남아 요요기 하치만구 신사에 왔다. 신사에서 갖추는 예의(?)도 배웠다. 토리이에 들어가기 전에는 가볍게 목례로 인사를 하고 들어간다.
귀여운 고양이 안녕.
신사에서 손을 씻고, 입을 헹구는 것도 배우고, 소원을 비는 것도 배웠다. 동전을 넣고, 종을 울려서 자신이 왔다는 걸 알리고, 한 번 박수 치고, 두 번 목례하고, 두 번 박수치기였나...? 순서는 헷갈린다. 그리고 소원을 빌면 되는데, 히로아키는 뭔가를 빌기 보다는 그저 이 곳의 자연을 느끼는 시간을 가진다고 했다.
신사는 자연이 있는 곳에 지어져서 자연을 지킨다고 했다.
일본의 고양이들은 사람을 보고도 잘 도망가지 않는다.
그리고 돌아와서 가려고 했던 비건 식당에 갔는데, 문이 닫혀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다른 비건 식당을 알아보기로 하고 공원으로 돌아갔다.
시부야 비건 베지 조거 Vegan veggie joga
급하게 찾다가 발견한 시부야의 비건 중화요리집. 비건 중국집은 처음이다. 음식이 다 맛있어 보여서 이 곳으로 골랐다. 점심도 배부르게 먹었다고 생각했는데 걷고, 이야기하다 보니까 배가 고파졌다.
비건 마파두부와 약선면을 골랐다. 1인 1음료도 필수라서 모링가 두유를 골랐다. 위에 올라간 휘핑크림만 달고, 음료는 안 달았다. 식당이 1인 1음료제를 하다니 기가 막히는 군. 그리고 그러면 처음 주문을 받을때부터 알려주거나 어디 적어놓을 것이지 실컷 주문 다 하니까 와서 알려줬다. 정말 가지가지. 음식도 기본 2만원부터 시작하면서.
음식 자체는 맛있었다. 다른 식당보다 빼어나게 맛있는 정도는 아니지만 역시 비건식으로도 이렇게 맛있게 만들 수 있으면서! 라는 생각이 들었다. 약선면은 정말 한약 국물을 마시는 맛이었는데 나는 한약을 좋아해서 맑고, 짭잘한 국물이 맛있었다. 건강해지는 맛!
히로아키는 여기 앉아서 이렇게 부자들이 올만한 식당에 자기가 일하는 농장의 야채를 납품해서, 부자들의 돈이 농장으로 흘러들어가도록 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싶다며 눈을 반짝였다.
신주쿠에서 시부야 요요기 공원, 요요기 공원에서 오모테산도, 오모테산도에서 다시 시부야로 향했다. 나도 시부야에서 버스 하나면 집에 갈 수 있고, 히로아키도 시부야에서 지하철을 타면 된다고 했다. 같이 시부야로 걸어가면서 나는 마트에서 유통기한이 다 되어가는 음식을 골라. 그랬을 때 지구에서 버려지는 음식을 줄일 수 있잖아. 낫또, 두부 같은 건 사와서 냉동하면 생명을 연장할 수 있지만 마트에서는 그렇게 팔 수 없어. 하지만 왜 엄마 아빠는 유통기한이 많이 남은 음식을 사올까? 하며 이야기를 꺼냈는데, 히로아키는 내게 바로 왜 엄마 아빠가 그렇게 하는지 생각해봤어? 하고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바로 해답이 나왔다. 엄마 아빠도 음식을 버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었다. 나도 음식을 버리고 싶지 않아서 하는 선택이었는데, 그저 같은 목적지를 보고 다른 길을 골랐을 뿐이었다.
내가 이런 방식으로 대화할 수 있는 사람으로 함께 지냈더라면 훨씬 다정하고 따뜻하게 지낼 수 있었을텐데. 싶은 생각에 이런 저런 감정이 휘몰아쳤다. 일본에서도 가치관을 중심에 지니고 살아간다면 역시 배움을 얻을 수 있는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구나. 감사하고 행복했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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