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6시가 되면 눈을 뜨는 나! 눈을 뜨니까 밖에서 빗소리가 들려왔다. 빗소리가 정신을 자꾸 깨워서 일어날까 싶었지만 아득바득 7시까지 눈을 감고 버텼다. 세탁세제를 사왔으니 드디어 빨래를 돌릴 수 있다! 이불이랑 빨래들을 한 번에 돌리기 위해 세탁기랑 건조기 두 대를 동시 가동했다. 비가 오는 날 빨래를 돌릴 수 있다니- 건조기가 좋기는 좋다.
세탁기는 4.5키로고 건조기는 4키로짜리라 이불이 들어갈까 했는데 겨우겨우 들어갔다. 하지만 이상한 점은 건조기에 더 잘 들어간다는 것. 그리고 세탁기는 30분이면 다 돌아갔는데 건조기는 30분 가동했는데도 1시간이 지나도록 안 멈추고 계속 돌아가서 그냥 중간에 못 참고 가져와버렸다.(물론 중간에 잘 되고 있는건지 확인하느라 열어보긴 했는데 일시정지 버튼 잘 눌렀다고!)
메르시 베이크(Merci Bake)
점심에는 비를 뚫고 집 근처의 메르시 베이크(Merci Bake メルシーベイク)에 다녀왔다. 당근케이크와 레어치즈케이크를 하나씩 샀다. 리뷰를 보니 도쿄에는 당근케이크가 흔하지 않다는 것 같다. 당근케이크는 작은 머핀 사이즈고, 레어치즈케이크는 작은 유리병에 들어있었다. 원래는 하나만 살까 했는데 막상 실제로 보 사이즈가 자그마해서 혼자서도 둘 다 먹을 수 있겠다 싶었다.
집에 돌아와서 전에 사둔 오이, 낫또, 토마토, 녹차랑 같이 점심으로 먹었다. 다 먹으니 정말 배가 찢어져라 부른 기분이었다. 말도 안된다. 위가 줄어들고 있다.
당근 케이크는 크림 치즈 부분이 맛있고, 레어 치즈 케이크는 위에 올라간 사브레 부분이 맛있었다. 뭔가 반대로 되어야 하는 것 같은데 정말 그랬다... 사브레랑 당근케이크의 크림치즈 부분이 함께라면 정말 완벽할 것 같다. 레어 치즈 케이크는 너무 생크림 같은 식감이라 별로였다. 당근케이크의 빵 부분은 너무 퐁신해서 그냥 그랬다. 나는 꾸덕한 빵에 꾸덕한 크림치즈가 가득 들어간 걸 좋아해서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위에 올라간 크림치즈는 정말 눈이 뜨일만큼 맛있었는데 호두가 너무 많아서 맛을 방해했다. 호두 없이 크림치즈 부분만 잔뜩 먹고싶다. 하지만 그냥 크림만 떠먹기는 달아서 빵 부분과 함께 먹을 수 밖에 없었다. 레어 그림치즈 위의 사브레도 정말 맛있었는데 그래도 아예 새로운 맛은 아니고 아는 맛있는 맛이었다.
오늘은 8시에 출근을 해서 5시 15분쯤 퇴근을 찍고 집을 나섰다. 비만 얌전히 온 게 아니라 엄청난 강품도 동반해서 남은 벚꽃이 하나도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한 줌 남은 벚꽃이라도 보러 가기 위해서 기치조지에 있는 이노카시라 공원으로 나섰다.
평소에 시부야에서 집을 오갈때는 버스만 타서 집 근처에서 열차를 타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이 열차 정말 신기하다. 개찰구가 없다! 역에 들어갈 때 카드를 찍는 게 아니라 버스처럼 열차를 탈때 카드를 찍는 방식이었다. 하차할 때도 옛날 환승 없는 버스처럼 그냥 내린다.
집에서 기치조지까지는 세 번 환승을 해야 했는데 가는 길에 일기를 쓰다가 지하철을 한 정거장 지나쳤다. 그래도 일본도 출구로 나가서 찍고 돌아오지 않아도 반대편 열차를 탈 수 있고, 열차도 금방 와서 바보짓을 했음에도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지체되지는 않았다.
이틀 동안 너무 더워서 가볍게 입고 왔더니 날이 생각보다 너무 추웠다. 비오는 날씨를 단단히 얕봤다. 밖에서 바들바들 떨고 안에 들어오면 딱 좋음을 반복했다. 하지만 역시 겉옷을 들고왔어야 했다.
대만식 화덕 만두집(Taiwan Roryu Koshomochi Kichijoji)
횬이 추천해준 대만식 화덕 만두집(Taiwan Roryu Koshomochi Kichijoji 台湾老劉胡椒餅 吉祥寺店)이 저녁 7시까지 영업이라 먼저 들렀다. 대만에서 미슐랭을 받은 화덕에서 구운 후추 만두를 야시장에서 먹었을 때 정말 감동적이게 맛있었는데 과연 그 맛을 다시 느낄 수 있을까 하며 기대에 차서 사봤다. 하지만 그닥… 맛있긴 했지만 대만에서 먹은 만두랑 비교한다면 정말 털끝에도 못 미칠 맛이었다. 겉의 반죽은 싱겁고 안에 들어간 돼지고기는 짰다. 우리가 아는 만두소처럼 간 돼지가 아니라 돼지고기가 크게 들어가 통으로 씹혀서 씹는 맛은 있었는데 간이 아쉬웠다. 물론 반죽이 싱겁고 소가 짜다는 건 둘을 동시에 적당히 먹어서 간을 맞춰 먹으라는 말 같은데 반죽도 소도 적당히 간을 맞춰주면 안되나? 나는 따로 먹어도 간이 맞는 음식을 먹어야 진짜 맛있다고 느끼는데. 첫 한 입에는 반죽만 들어오는데 첫 입을 물었을 때부터 맛있다고 느낄 수 있게 만들어야지! 아직은 일본에서 진짜 눈을 뜨이게 할 만큼, 다시 가서 먹고싶을만큼 맛있는 음식을 못 먹어봤다. 인생에서 최고로 맛있다고 느낀 음식들은 한국이랑 태국에 있었다. 하지만 한식이 먹고 싶은 건 아니야…
후추빵을 먹으면서 5분쯤 걷다보니 Tony’s pizza에 금방 도착했다. 원래 Tony’s pizza 먹으러 왔던거라 반 남은 후추빵은 나중에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가방에 넣었다. 이 피자집이 인스타그램에서 인생피자라고 와글와글하기에 와봤는데 의외로 웨이팅이 없었다. 조금만 유명하면 어디든 웨이팅인 도쿄에서 정말 희귀한 일이다.
Tony’s pizza
정말 귀엽게 꾸며져 있고 음악도 찰떡같다. 분위기도 포근하니 좋다. 밖에서 사진을 찍을 때는 몰랐는데, 토니 할아버지는 창문가에 앉아서 계속 밖을 지켜보고 계신다. 아마 사진 찍는 것도 다 지켜보고 계셨을 것 같다.
피자는 두조각이 1인분 단위다. 2조각 단위로 주문이 가능하다. 4조각은 양이 많다는 리뷰가 많아서 토니의 간판메뉴인 믹스로 주문했다. (메뉴판에 토니의 얼굴이라고 쓰여있다.) 머쉬룸과 믹스 중에 고민했는데, 토니의 얼굴이라는 멘트에 믹스로 골랐다.
음료 따로 없이 믹스 피자 1/4조각을 주문했다. 정말 오리지널 피자, 집에서 치즈를 한가-득 올려 구워준 피자 느낌이다. 눈이 번쩍 뜨이는 맛은 아니었지만 정말 포근하고 따뜻하게 맛있는 맛이었다. 고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중간 중간 씹히는 고기가 맛있을 것 같은데 나는 치즈만 가득 올라간 치즈피자를 좋아해서 다음에는 꼭 머쉬룸으로 먹어보고 싶다. 여기를 위해서 다시 기치조지까지 오지는 않더라도 누가 가자고 한다면 재방문할 의사가 있는 식당이었다.
아직은 식사를 하러 앉아서 다들 계산은 어떻게 하는지, 주문은 어떻게 하는지 소리내서 종업원을 불러도 되는지 이런 것들을 눈치로 파악하려고 하다보니 늘 긴장해서 식사를 한다. 언제쯤 자연스러워질까. 겨우 3일째에 하는 고민. 1년 뒤에 보면 이 고민도 우습겠지?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게 될까? 아니면 3일째에 벌써 자연스럽길 바랐냐! 하고 생각하게 될까?
피자를 먹고 이노카시라 공원으로 가는 길에 OIOI가 보이기에 잠시 들렀다. 땅콩버터랑 견과류도 사고 싶었는데 일단 냉동실에 음식이 점점 쌓이고 있어서 일단 첫 주에는 조금만 더 상황을 지켜보고 뭔가를 사자 싶어서 관뒀다. 대신 티라미수랑 몽블랑이 맛있어 보여서 샀다. 비닐백을 받기 싫어서 박스 두 개를 손에 들고 정말 불편하게 왔다. 하지만 철저하게 유료로 비닐봉지나 쇼핑백을 제공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자원을 함부로 낭비하지 말아라 인간들이여. 불편을 감수해.
그래서 양 손에 상자를 달랑 달랑 들고 이노카시라 공원을 구경다녔다. 정말 강한 비바람이었어서 벚꽃이 많이 떨어졌다. 오히려 그래서 밤에 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벚꽃이 뚜렷하게 다 보이지 않아서 이 길에 있는 나무들에 벚꽃이 가득 피어있다- 하고 상상하면서 다닐 수 있었다. 오리배가 잔뜩 주차되어 있는 것도 귀여웠다. 사람들이 강가에 앉아서 맥주 한 캔씩 하는 것도 벤치에 앉아서 수다 떠는 것도 부러웠다. 나도 서울로 돌아가면 친구들이랑 저렇게 한강에 앉아서 수다떨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을텐데.
춥고, 어둡고, 벚꽃도 잘 보이지 않아서 이노카시라 공원을 후다닥 구경하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휴대폰으로 일기를 쓰다가 또 같은 곳에서 한 정거장을 지나쳤다. 3번 환승하면서 딱 한 정거장만 타야하는 구간이 있었는데 그 구간에서 자꾸 정신을 잃고 내리는 곳을 지나쳤다. 벌써 이렇게 정신을 빼놓고 다니다니. 그래서 또 반대로 탔다. 반대로 타면서 좌석버스 의자처럼 생긴 의자가 있는 신기한 열차를 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탄 열차는 저렇게 앞이 막힌 곳에 머리로 들어와서 꼬리가 머리가 돼서 출발한다. 열차가 한 방향으로 달리는 게 아니라 그대로 반대로도 달린다니 너무 신기해!
잠시 넷플 보면서 아까 남은 만두를 다 먹었는데 밖에서 먹을 때는 분명 바닥도 갓 나오고 따끈한 상태였는데 집에 들고 와서 눅눅해진 채로 먹는게 그때 먹을 때보다 맛있었다. 몽블랑은 그냥 맛있었고, 티라미수도 가게에서 받아서 금방 한 입을 먹었을 때는 싸구려 맛이 난다고 생각했는데 집에 돌아와서 먹으니 좀 더 나았다. 왜일까? 분명 집에 들고 오면서 맛이 떨어졌을텐데. 정말 내가 생각한 것보다 내가 더 긴장하고 돌아다녀서 그런걸까? 집에 돌아와서 혼자 고요한 마음으로 쉬면서 먹으니까 더 맛을 잘 음미하게 되고 맛있게 느껴지는 건 맞는 것 같다. 정말 미스테리하다. 스물이 넘어서 일본, 베트남, 태국, 대만 여기저기를 여행 다녔는데, 여행을 다닐 때는 이런 적이 없었는데. 정말 새로운 나날들을 보내는 중!
정말 시간이 빨리 흐르는 이유는 똑같은 하루하루를 반복해서 그런거라는 게 맞는 것 같다. 매일 다른 하루 하루를 보내니까 시간이 천천히 간다. 이제 겨우 3일이 지났다니. 내일은 드디어 워홀 3종 세트 해치우는 날! 어서 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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