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함께 세종문화회관에서 프랑스 뮤지컬인 노트르담 드 파리 한국어 공연을 보고 왔다. 나는 노트르담 드 파리 뮤지컬을 정말 좋아한다. 뮤지컬에 빠져 빅토르 위고 원작을 출판사마다 구매해 번역본 별로 읽어볼 정도의 덕후다. 뮤지컬 영상과 노래는 당연히 귀가 닳도록 듣고 봤고, 애니메이션까지 섭렵했다. 2021년 11월에 노트르담 드 파리 내한 공연을 왔을 때도 당연하게 달려가서 봤다. 내한 공연과 프렌치 오리지널 버전에 귀가 익숙해져 있는터라 솔직히 한국어 공연에는 큰 기대를 하지 않고 갔다. 하지만 공연장에서 나올 때는 가슴이 벅찬 채로 나왔다. 모국어로 공연을 보는 게 주는 감동이 있었고, 배우들도 기대보다도 더 멋진 공연을 보여주었다. 노트르담 드 파리 덕후인 만큼 한 곡 한 곡마다 아주 사적인 소감을 남겨본다.
24년 2월 23일 금요일 저녁 7시 30분 캐스팅 보드
내가 공연을 본 날의 캐스팅 보드다. 나는 마이클 리와 윤형렬 배우의 공연을 보고 싶어서 두 배우가 나오는 날로 예약했다. 뮤지컬 배우 뿐만 아니라 댄서와 아크로바틱, 브레이커 댄서들의 캐스트도 캐스팅 보드에 나온다.
나는 1층의 E열 30번에 앉아서 공연을 감상했다. 배우들의 얼굴 표정 하나 하나가 다 보일 정로도 가까운 위치였다. 배우들과 댄서들의 표정 손모양 하나하나까지 다 볼 수 있었다.
대성당들의 시대(Le temps des cathédrales)
노트르담 드 파리는 뮤지컬에서 가장 유명한 곡인 대성당들의 시대로 시작된다. 그랭구와르 역을 맡은 마이클 리가 나와서 혼자 노래를 시작한다. 정말 첫 곡부터 압도되는 기분을 받았다. 역시 마이클 리가 나오는 표를 끊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리의 방랑자들(Les sans-papiers)
클로팽 역을 맡은 정지후 배우가 혼자서 주로 노래를 한다. 프렌치 버전에서는 클로팽의 목소리가 훨씬 거칠었는데 그에 반해서 무척 깨끗하고 맑은 목소리가 났다. 한국 배우들은 전반적으로 긁은 듯 거친 목소리를 내는 뮤지컬 배우가 잘 없는 것 같다. 하지만 힘 있고 듣기 좋은 목소리여서 클로팽이라는 야생의 거친 캐릭터에 비해서는 맑은 목소리여도 노래는 너무나 듣기 좋았다.
프렌치 버전에서는 뒤에서 들리는 코러스의 노래소리가 훨씬 크게 들렸는데 거의 들리지 않고 클로팽의 노랫소리만 단독으로 들렸다. 코러스가 조금 더 크게 들리면 더 몰입감이 느껴질 것 같았다.
영상으로 볼 때는 뒤에서 춤추는 댄서들이 카메라에 잡히지 않아 배우의 연기에만 집중했는데 현장에서 공연을 보니 댄서들의 춤이나 표정이 훨씬 시선을 많이 끌었다. 눈이 화려할 정도로 댄서들의 춤이 강렬했다. 내가 무대를 바라보고 오른쪽에 앉아 있어서 특히 오른쪽의 댄서 분들을 많이 볼 수 있었는데 오른쪽 여자 댄서분들이 노래에 맞춰 "악!"하고 소리치며 입을 크게 벌리는 연기를 하며 춤을 추는데 너무나 몰입되었다.
프롤로의 명령(Intervention de Frollo)
프렌치 내한 공연을 할 때 프롤로역을 맡았던 오리지널 멤버인 다니엘 라부아가 한국에 왔었다. 프랑스는 예매할 때 캐스팅 보드를 공개해 주지 않는다. 나는 운에 맡기는 심정으로 예매했고, 아주 운 좋게도 다니엘 라부아가 나오는 공연을 예매해 다니엘 라부아의 공연을 볼 수 있었다. 그래서 악역인 프롤로에게 괜한 친밀감을 가지고 있었고, 기대가 컸다. 첫 등장이었던 이정열 배우의 연기는 아주 힘 있고 좋았다.
에스메랄다의 춤(Danse d'Esmeralda) / 보헤미안(Bohèmienne)
이 날 에스메랄다 역은 솔라가 맡았다. 에스메랄다는 거리를 자유롭게 떠도는 집시이다. 너무나 아름다운 여인이라 보는 사람마다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솔라는 너무 과한 웨이브와 함께 등장해 놀랐다. 에스메랄다는 자신의 아름다움이나 섹시함 같은 걸 과시하는 캐릭터가 아니다. 그저 순수하고 노래를 사랑하고 갓 소녀에서 벗어나 여인의 태가 나는 여성이다. 그런 에스메랄다가 너무 자신의 아름다움, 성적인 매력을 어필하려는 듯한 등장은 내가 아는 에스메랄다라가 아니었다.
그리고 목소리의 강약이 너무 심했다. 한 소절 한 소절 약하게 시작해 중간이 잠시 강하다가 끝이 다시 약해졌다. 앞 뒤가 힘이 빠지니까 중간에 잠시 힘이 들어가도 힘이 안 느꼈다. 다른 뮤지컬 배우들은 노래의 시작부터 강하게 힘을 주고, 끝까지 그 힘이 받쳐주는 느낌이라 상대적으로 힘이 빠지는 게 더 느껴졌다. 뮤지컬 공연에 적합한 발성은 아니라고 느껴져 아쉬웠다.
에스메랄다 알아둬 / 에스메랄다, 너도(Esmeralda tu sais)
클로팽이 에스메랄다에게 당부의 말을 전하는 넘버다. 클로팽 역을 맡은 장지후 배우가 정말 힘 있게 노래를 잘했다.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그렇게 좋아하는 넘버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말 노래를 잘해서 두 손을 모으고 감동하면 들었다.
다이아몬드(Ces diamants-là)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게 좋아하는 넘버 중에 하나다. 플뢰르 드 리스는 뮤지컬에서는 자주 등장하는 캐릭터는 아니지만, 플뢰르 드 리스가 등장하는 곡이 모두 좋아서 아주 애정을 가지는 캐릭터다. 프렌치 오리지널에서는 배우가 옥구슬 굴러가는 듯 노래해서 정말 좋아했는데 한국 배우가 이 곡을 부를 때는 만족스러웠던 적이 한 번도 없어 걱정했다. 하지만 유주연 배우의 연기와 노래는 정말 기대 이상이었다. 2부에 나오는 곡에서도 원작과는 다른 연기지만 유주연 배우만의 연기와 해석이 너무나 좋았다.
미치광이들의 축제(La fête des fous)
광인들이 교황에 콰지모도가 선발되는 장면이다. 원작에서도 외투를 벗었다, 입었다 하며 등장하지만 마이클 리는 머리도 반묶음으로 묶었다 풀었다 하며 등장한다. 마이클 리의 연기와 노래는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에 가까웠다. 나는 마이클 리가 한국인 배우들보다도 전달력 있을 만큼 완벽하게 한국어를 해서 이 정도로 한국어를 잘하셨나? 했는데 커튼콜에서 보니 여전히 말할 때는 한국어 발음이 어색했다. 그만큼 피나는 노력과 연습이 느껴졌다.
미치광이들의 교황(Le Pape des fous)
노트르담 드 파리의 주인공이자, 내가 가장 기대한 윤형렬 배우의 콰지모도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이다. 한국어 버전 공연을 영상으로 찾아보면서 윤형렬 배우의 콰지모도가 내가 본 콰지모도 중 가장 좋았다. 그래서 꼭 윤형렬 배우의 콰지모도를 보고자 이 날로 예약을 했던 터였다. 미치광이들의 교황 역시 내가 가장 좋아하는 넘버 중 하나여서 정말 가슴 앞에 두 손을 모으고 봤다.
윤형렬 배우님도 원래 목소리가 워낙 맑아서 그런지 곡이 시작될 때는 목소리를 긁으면서 시작해도 가면 갈수록 원래의 맑은 목소리가 나왔다. 원래 거친 목소리가 아니다 보니 거칠게 연기하는 것이 많이 드러났다. 하지만 워낙 목소리도 듣기 좋기에 조금 신경은 쓰여도 즐겁게 들었다.
소품인 왕관이 너무 은박지 종이를 자른 것처럼 만들어져서 심하게 눈길을 끌었다. 조금 더 자연스럽고 성의 있게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대 배경이 15세기 프랑스인데 뾰족뾰족하고 가위로 오려 만든 것 같은 쨍한 은색의 왕관은 너무 몰입을 방해하는 소품이었다.
버려진 아이(L'enfant trouvé)
콰지모도는 태어나자마자 끔찍한 외모에 어머니 마저 버린,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은 인물이다. 그런 콰지모도를 글까지 가르쳐가며 종 치기로 살아가게 해 준 인물이 프롤로 신부다. 마녀는 콰지모도가 프롤로 신부에게 나는 당신의 개라고 하며 충성을 맹세하는 장면의 곡이다. 윤형렬 배우가 정말 절절하게 노래하고 연기해 냈다.
기적궁 / 기적의 궁전(La cour des miracles)
장지후 배우가 주로 노래를 하는 장면이다. 영상으로 시청할 때는 클로팽에게 시선이 많이 갔는데 현장에서는 클로팽은 위의 봉에 매달려 있고, 관객은 밑에 앉아 있다 보니 시선이 바로 닿는 댄서들에게 눈길이 훨씬 많이 갔다. 장지후 배우가 워낙 힘 있게 노래를 잘해서 눈도 귀도 즐거웠다.
배우들이랑 댄서들끼리 하이터치를 하는 등 액션이 있었다. 연기라면 괜찮지만 공연 안에서 댄서끼리나 댄서와 배우들끼리의 친목이 드러나지는 않기를 바라면서 약간은 조마조마했다. 개인이 조금이라도 드러나는 순간 몰입이 깨져버리기 때문에 무대 위에서는 철저하게 연기만 해주었으면 했다.
태양처럼 눈부신(Beau comme le soleil)
애정하는 캐릭터인 플뢰르 드 리스가 등장하는 장면이었다. 에스메랄다와의 화음이 중요한 곡이다. 솔라가 첫 등장에서 힘이 많이 빠져서 그 뒤로 솔라가 등장할 때마다 자꾸 조마조마한 마음이 들어서 솔라와 유주연 배우의 실력차가 많이 드러날까 걱정을 했지만 생각보다는 비슷한 수준으로 힘을 잘 줬다. 직전 곡인 '페뷔스란 이름'에서도 생각보다 아름답게 잘 노래했다. 하지만 태양처럼 눈부신에서의 화음은 기대만큼 조화롭지는 않았다.
괴로워(Déchiré)
현장에서 보고 정말 감동하고 놀라움까지 느낀 곡이었다. 김승대 배우가 연기한 페뷔스가 에스메랄다와 플뢰르 드 리스 두 여자 사이에서 고민하며 괴로워하는 곡이다. 김승대 배우의 노래도 좋았지만 현장에서 보니 댄서 5명의 연기가 압도적이었다. 노래가 진행되면서 조명이 5명의 댄서들을 랜덤 하게 비추는데 다른 댄서에게 조명이 비출 때도 계속 쉬지 않고 한 곡 내내 격하게 춤을 춘다. 나머지 댄서를 비출 때는 암흑처럼 보이지도 않는데 계속해서 멈추지 않고 춤을 춘다. 내 자리에서 우연하게 조명 사이에 댄서가 겹쳐 보여서 볼 수 있었는데 정말 한 곡 내내 쉬지 않고 춤을 추는 것 같다. 조명도 정말 멋지게 잡아낸다. 댄서들이 격렬하고 춤추고 공중에 뛰곤 하는데 공중에 있는 순간을 포착해 조명 꺼지는데 마치 눈에 댄서에 공중에 떠있는 모습이 박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뒤로 가면 갈수록 조명이 짧은 텀으로 다음 댄서에게로 옮겨지는데 정말 고뇌하는 뉴런들의 움직임처럼 빠르고 처절한 춤과 조명의 이동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이 장면을 눈에 담고 있는 게 황송한 기분까지도 들었다.
아름답다(Belle)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대성당들의 시대 다음으로 유명한 삼중창인 아름답다(Belle,벨). 콰지모도, 프롤로, 페뷔스 세 사람의 삼중창은 정말 귀가 행복했다. 이 삼중창은 정말 조화로웠다. 세 사람 중에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이렇게 노래를 조화롭고 힘 있게 잘할 수가.
파멸의 길로 나를(Tu vas me détruire)
이정열 배우님의 프롤로는 정말 좋았다. 하지만 오리지널 영상을 너무 많이 봐서 배우들의 동작들까지 다 외우는 바람에 작은 포인트에서 아쉬움을 느꼈다. 오리지널에서는 기둥 두 개가 프롤로에게 다가오고 프롤로는 두 기둥을 밀어내는 액션을 취하는데 그 액션이 아예 나오지 않아서 아쉬웠다. 그 힘겹게 기둥을 밀어내는 장면에서 느껴지는 고통스러울 만큼의 고뇌가 있어서 아쉬웠던 듯하다.
사랑의 기쁨(La volupté)
이 장면에서 솔라의 노래가 가장 아쉬웠다. 1부만 장장 65분이라는 긴 공연이기에 1부의 끝으로 가면서 집중력이 많이 떨어진 듯 느껴졌다. 마마무와 개인으로의 솔라는 정말 정말 좋아하는데 노트르담 드 파리 뮤지컬 1부에서는 전반적으로 아쉬웠다. 2부에서는 1부보다 훨씬 괜찮은 연기를 보여줬다. 2부 후기에서 더 자세히 이야기하고 싶다.
2부의 후기를 이어서 보고싶은 사람은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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