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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잘하는 회사생활

시골 로망을 실현하는 재택근무가 시작되다

by 디자이너 유디 2024.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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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도 없을 파란만장한 사건을 겪으며 재택근무를 시작하게 된 나. 보기만 해도 속이 울렁거릴 만큼 사람이 많은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하다가 주변에 사람은커녕 생명체라고는 닭, 소, 개 밖에 없는 시골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배달의 민족을 켜서 모든 버튼을 눌러봐도 '텅~' 밖에 없고, 걸어서 한 시간 거리 내에 갈 수 있는 작은 슈퍼 하나 없는 진짜 깡시골생활을 말이다.
 
 
 

시골에서의 새로운 루틴

 
지긋지긋하고 지옥 같은 출퇴근 대신 강아지 산책이 시작되었다. 우리 가족은 대구의 유기견 센터에서 데려온 커다란 진돗개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다. 이 강아지 덕분에 나는 출퇴근이 사라졌다고 해서 게으름을 피울 수 없었다. 아침에 알람이 울리면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나를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는 강아지 산책을 시키러 뛰쳐나가야 했다. 강아지 산책을 시키면 배가 고팠고, 엄마와 함께 든든하고 맛있는 아침을 차려 먹었다. 그렇게 강아지 산책과 아침 식사가 끝나면 오전 8시. 나는 책상에 앉아 노트북을 열고 업무를 시작했다.

누워있는 강아지 사진
우리집의 자랑인 잘생긴 진돗개

 
 
 
 

시골 디톡스

 
나는 눈에 띄게 건강해졌다. 독소가 빠지는 느낌이었다. 서울에서 나는 농담 보태 7일 중에 8일 술을 마셨다. 주말에는 푹 쉬고 싶어 오히려 평일에 퇴근하고 매일같이 친구를 만났다. 그렇게 술과 매운 음식,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몸은 조용히 망가져가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늘 배에 가스가 차고, 음식만 먹으면 배가 아파서 화장실에 달려가야 했다.
 
하지만 시골에서 텃밭에서 키운 채소를 따다 엄마가 손수 만든 귀한 음식을 삼시세끼 먹으니 배에서 어떤 통증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 이게 정상적인 상태구나. 늘 배에 가스가 차고 아픈 상태로 살다 보니 아프지 않은 상태가 정상이라는 것조차도 잊고 살고 있었다. 가끔씩 서울의 사무실에 출근하면 마주치는 모두에게 "얼굴 좋아졌네" 하는 인사말을 들었다.
 
 
 
 

규칙적인 생활의 시작

 
매일 똑같은 생활이 시작됐다. 아침에 일어나서 강아지 산책을 시키고, 밥을 먹고, 8시가 되면 업무를 시작한다. 그리고 1시가 되면 점심을 먹는다. 중간에 배가 고프면 간식을 먹는다. 5시가 되면 퇴근하고 강아지 산책을 시키러 나간다. 6시에 저녁을 먹는다.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고 씻고 휴식을 취한다.

외식을 하려면 무조건 아빠가 차를 태워서 데리고 나가야 하기에 한 달에 한 번도 외식을 하기 어려웠다. 꼼짝없이 집에 갇혀 먹고 자고 똑같은 매일이 반복됐다.
 
대표님은 가끔 나와 미팅을 하면 끊임없이 괜찮은지 살만한지를 물어봤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대체 디자이너가 시골에 틀어박혀서 어떻게 견디며 살고 있는 건지 궁금해했다.
 
 
 
 

자연이 주는 선물

 
나의 매일은 똑같았지만 그렇게 흘러가는 매일이 모여서 자연은 늘 새로운 풍경을 보여줬다. 여름에 시작된 나의 재택근무는 해를 넘기며 봄을 맞았다. 봄이 되자 온 산과 들에서 산나물과 열매가 나기 시작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산에서 쑥과 냉이를 캐서 엄마한테 가져다주는 아이였다. 그 아이는 커서도 여전히 나물 캐는 걸 좋아했다.

쑥, 냉이, 취나물, 미나리, 파드득나물, 고사리. 자연은 끊임없이 일용할 양식을 피워냈다. 산딸기, 보리수, 오디, 감, 밤, 도토리 등 겨울이 오기 전까지 나는 오만 산을 헤집고 다니며 나물과 열매를 따먹고 주우러 다니느라 바빴다. 평일에는 방에 틀어박혀 열심히 일하다가도 주말만 되면 바구니와 칼을 들고 나물을 따러 다녔다. 때로는 엄마와 둘이 쑥을 캐고, 때로는 강아지를 데리고 취나물을 따러 다녔다.
 

산에서 나오는 나물과 열매 사진
왼쪽 위 - 보리수, 아래 - 미나리, 오른쪽 위- 쑥, 아래 - 산딸기

 
 
 
 

가족들이랑 같이 살 수 있어?

 
집에서 재택근무를 하게 됐다고 했을 때 팀원들은 가장 먼저 엄마아빠랑 같이 살 수 있냐고 물었다. 줄곧 같이 지내던 것도 아니고 한 번 떨어져 살면 계속 혼자 살고 싶지 않냐고. 나는 중고등학생 때부터 줄곧 기숙사 생활을 하다가 졸업하고는 일을 위해서 바로 자취를 시작했다. 그래서 오히려 나에게는 집에서 가족들과 지내는 시간이 가지고 싶었다.

이미 혼자 생활을 해봤기 때문에 음식과 청소, 빨래 등 집을 깨끗한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나는 알고 있었고, 그 모든 부담을 부모님에게 지울 수 없었다. 생활비를 책정하고 집안일을 분담하고, 강아지 케어를 도맡았다. 나는 딸이지만 이 집 안에서 3분의 1을 맡는 구성원이어야 했다.
 
 
 

새로운 변화를 앞두다

 
벌써 재택근무를 시작하고 만으로 2년 반이 흘렀다. 나는 시골생활도 너무 사랑하지만, 내가 혼자서 시골에서 살 수 있냐고 묻는다면 불가능하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이 시골생활은 부모님의 힘으로 유지되는 생활이었다. 나와, 강아지는 엄마 아빠의 생활력에 얹혀서 살아가는 존재에 불과했다.
 
나는 평생 살 곳을 정한다면 대체 어디가 맞는 사람일까? 살아보면 답을 알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 서울에서도 살아보고, 부산에서도 살아보고, 시골에서도 살아봤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정답을 찾지 못했다. 나는 환경의 영향을 크게 받는 사람이 아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나를 데리고 살 수 있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더욱 이곳이 나에게 맞다고 딱 잘라 말할 수 없고 앞으로도 끊임없는 고민이 필요할터다.
 
나는 지금의 생활이 행복하다. 행복하지 않아서 변화를 만드는 게 아니다. 서울에는 서울에서의 행복이 있었고, 시골에는 시골에서의 행복이 있었다. 그렇기에 아마 내가 살아보지 않은 곳에 또 새로운 행복이 있을 거다.
 
지금은 지나간 시간의 기록을 찬찬히 남기는 중이라, 재택근무를 시작했다는 제목을 눌러 들어오자마자 다음을 그린다는 말에 당황스러울 수도 있겠다. 나는 지금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발급받고 출국 계획을 세우고 있다. 서울에서도, 시골에서도 즐거웠던 나는 외국인으로 사는 삶도 즐겁게 견딜 수 있을까?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까? 더 재밌는 이야기들을 기대해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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