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이런 방법으로 재택근무를 시작할 수 있었을까?

재택근무를 회사 차원에서 진행하는 곳도 있을 테지만, 우리 회사의 경우 원칙적으로 사무실 출근이 기본이다. 코로나로 인해서 2년 정도 재택근무 반 사무실 출근 반으로 진행하는 시기도 있었지만 코로나가 점점 일상이 되어가면서 사무실 출근이 주가 되고 있었다.
 
이런 시기에 어떻게 회사 전체에서 오직 나만 100% 풀재택을 진행하게 되었을까? 재택근무를 시작하게 되는 계기와 방법은 저마다일 테지만 이렇게 재택근무를 시작하게 된 경우는 정말로 나밖에 없을 거다.
 
 
 

전셋집이 날아갔다.

실제로 집주인에게 받은 메세지

 

갑자기 청천벽력같이 날아온 메시지 한 통. 아침에 사무실에 출근하자마자 뒤통수를 세게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원래 계약이 만료되는 시기는 12월. 9개월이 남은 이 시기에 갑자기 대략 2달 뒤에 집에서 나가달라고 문자가 온 것이다. 갑자기 살 곳이 없어진다는 생각에 일이 손에 안 잡혔다. 이사라니,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는데, 대체 어디로? 너무나 암담했다. 하지만 별 수 있나. 나는 부랴부랴 부동산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회사는 망하고 집은 날아가고

 
그로부터 1주일 뒤. 원래 힘든 일은 한 번에 닥친다고 했던가. 월마다 진행되는 전사회사이에서 갑자기 대표님이 우리 회사 이대로면 반년도 못 버텨. 폭탄 발언을 던졌다. 리더십에서는 어느정도 이런 이야기가 공유되고 있었던 것 같은데 매니저 직급이었던 나는 처음 듣는 이야기. 당장 두 달 뒤에 집을 새로 구해야 하는데 회사는 반 년도 못 버티고 문을 닫는다고? 그럼 나는 어떡하지?
 
 
 

집을 구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나는 갑자기 엄청난 기로에 놓였다. 월세를 감당할 자신은 없으니 전세를 구해야 하는데 전셋집은 기본이 2년 계약이다. 집은 실컷 2년 계약으로 구했는데 몇 개월 뒤에 회사가 문을 닫아버리면 어쩌지? 중개 수수료에 전세대출에 중고 가전 구매에 이사비에 청소비, 관리비. 돈 들어갈 데는 끝이 없다. 이 모든 걸 어떻게 감당하지? 정말 눈을 감으면 매 순간 물음표가 마구 쏟아졌다.
 
 
 

나에게 주어진 선택지

 
나는 팀장님(이하 솔라)에게 내 상황을 정리해서 들고 갔다.
 
1. 집 계약이 만료되는 6월까지 근무하고 계약을 종료한다.
2. 리스크를 감당하고 새로운 집을 계약하고 근무를 지속한다.
3. 선택을 보류한다. 5월까지 선택을 미루고 회사 상황을 더 지켜본다.
 
1번의 경우 깔끔하게 퇴사하면 되는 거지만, 회사와 나 둘 다 서로에게 미련이 많았다. 나는 나의 가치관과 잘 맞는 회사, 그리고 좋은 사람들과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고 회사는 좋은 평가를 받으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직원을 내보내고 싶지 않았다.
 
2번의 경우 중개 수수료 정도라도 회사에서 부담해 줄 수 있는지 등 회사와의 조율이 필요했다. 모든 걸 혼자 짊어지기는 너무 벅찼다. 하지만 당장 몇 달 뒤에 문을 닫을지도 모르는 회사 입장에서도 어려운 선택이 아닐 수 없었다.
 
3번의 경우 근무를 지속하게 된다면 발등에 아주 뜨거운 불이 떨어지게 될 터였다.
 
나는 이렇게 무엇 하나 최선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3개의 제안을 들고 솔라에게 갔다. 솔라는 나의 고민을 듣고 개인이 모두 감당하고 짊어질 문제가 아니라며 회사 차원에서도 고민해 보고 알려주겠다고 하셨다.
 
 
 
 

시골로 내려가 재택근무를 시작하게 되다

 

그리고 다음 미팅에서 솔라는 나에게 100% 재택근무 전환을 제안하셨다. 서울에 집이 있다면 고민하지 않았을 일인데, 서울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서울을 헤매며 고생하고 있다는 서러움에 만약 회사를 퇴사한다는 선택지를 고르게 된다면 어차피 당분간은 시골에 있는 본가에 내려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그런 나에게 이건 너무나 감사한 제안이었다.
 
나는 계속 '나 혼자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하고 머리를 싸매고 있었다. 그 외에는 어떤 선택지도 없다고 생각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너무나 독립적인 성격으로 자라와서 내 문제는 결국 내가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부모님에게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고 대부분의 문제를 혼자서 해결해 왔다. 그런 나에게 팀원의 거취 문제를 발 벗고 나서서 함께 고민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경험은 적잖은 감동을 줬다. 함께 고민하는 걸 넘어서 적극적으로 해결해 주는 사람이 회사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나니 천군만마를 얻은 듯 든든했다. 또한 그 믿음에 기반해 더 열심히 회사를 위해서 일하고 싶다는 충성심도 생겨났다.
 
솔라는 내가 거취문제를 빨리 해결하고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하셨다. 나는 당장 미팅에 들어가기 직전까지 일을 하가다고 당장 몇 달 뒤면 내가 서울에 발 붙일 곳이 없다는 생각에 대한 불안감으로 업무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지고 있었다. 수시로 휴대폰을 켜 부동산 어플에 들어가 보며 내가 가진 돈으로는 내가 원하는 지역에 집을 구할 수 없고, 그럼 대체 어느 동네를 알아봐야 하지? 하는 생각에 막막하고 지쳐가고 있었다. 그리고 솔라는 그런 내 마음을 읽은 듯 무엇보다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빠르게 제공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 내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세상에는 정말로 조언을 구할 수 있고 도움을 주는 어른도 있구나.
 
나는 그렇게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그리고 회사는 계속해서 런웨이를 이어나가, 어느새 나는 5년 차 디자이너이자, 3년째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 직장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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