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는 퇴근하고도, 밤늦게도, 주말에도, 휴가에도, 시간과 쉬는 날을 가리지 않고 메세지를 보낸다. 혹자는 대체 왜 시대를 거슬러가냐고 할 수도 있다. 회사에 꼰대들이 많냐고? 우리 회사는 사람들이 말하는 MZ 집합소다. 이쯤이면 다시 왜? 라는 질문이 나올 타이밍이다. 대체 왜?
우선 퇴근 후나 휴가 중에 메세지를 보내는 것이 매너 없는 행위인 이유는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 이해하리라 생각한다. 퇴근 시간 이후에 회사 메신저가 울리면 이유없이 불쾌한 사람들도 있을테고, 업무 시간이 아닌데 다른 일을 제쳐두고 답장해야 한다는 의무감, 또 휴가때는 회사를 잊고 휴가에 푹 빠져 제대로 즐겨야 하는데 눈치 없는 메세지는 달콤한 휴가를 방해하는 요소다. 우리 회사만의 독특한 문화를 이야기하고 싶어서 쓰는 글이니 편안한 마음으로 읽어주길 바란다.
다함께 둘러앉아 의논하다
우리는 대표, 팀장, 팀원 할 것 없이 모여 이름표 떼고 회의를 한다. 팀장님 하고 부르는 문화도 없다. 대표도 ‘피오’하고 닉네임으로 부른다. 우리는 피오가 구린 아이디어를 가져오면 "와, 피오. 정말 구린 것 같아요." 하고 피드백을 보낸다. 그렇기에 밤낮이고 쉬는 날이고 경계 없이 메세지를 보내자는 팀장님(이하 에릭)의 제안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역시 "와, 에릭. 정말 구린 것 같아요." 하고 피드백을 보냈을거다. 어째서 우리는 밤낮 없이, 주말과 쉬는 날을 가리지 않고 아무때나 메세지를 보내자는 의견에 동의했을까?
가장 표면적인 이유는 퇴근 시간이나 상대방이 휴가라는 이유로 메세지를 보내지 않고 기다리다가 메세지 보내는 걸 잊어버려서 업무를 놓치거나 지장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특히 우리 회사는 유연근무제(시차출퇴근제)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에 내가 메세지를 보내려는 상대방이 반드시 나와 같은 시간대에 업무를 하지 않는다. 나는 퇴근했지만 출근 시간이 달라 남아서 일하고 있는 직원들이 많다. 따라서 상대가 퇴근 했는지를 매번 파악하면서 메세지를 보내는 게 번거로운 일이었다.
하지만 우리의 결정에는 그것보다 더 중요한 요소가 있었다.
보내는 사람은 답장을 기대하지 말 것
에릭은 이 제안에 전제조건을 덧붙였다. '답장은 상대방의 몫'이라고. 나는 일을 미루지 않고 효율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 지금 메세지를 보내놓지만 상대방이 퇴근을 했든지, 휴가 중이든지 답장을 바라고 보내지 말 것. 나는 확인을 위한 메세지를 보낸다는 내 업무를 지금 해결했을 뿐, 상대방은 업무 시간 외에는 내 메세지에 답장을 보내야 할 의무가 없다. 보내는 사람이 바쁘고 말고, 급하고 말고는 받는 사람이 고려할 바가 아니다. 정말로 바쁘고 급한 일이면 업무 시간 내에 했어야지.
우리가 시도때도 없이 메세지를 보내도 된다는 이 결정을 내릴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포인트는 반대로 '답장에 대한 의무감을 덜어낸다'는 거였다. 업무 효율을 높이기 위해서 생각 났을 때 미루지 말고 바로 바로 메세지 보내도 되는데, 답장 안해도 돼. 이렇게 소통의 무게를 훅 줄이는 거다.
퇴근 시간 이후에 오는 메세지가 불편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퇴근 이후에도 메세지를 받은 사람이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퇴근 시간 이후에도 메세지를 보내자는 결정을 하면서 동시에 '퇴근 시간 이후에는 답장하지 말라'는 사실을 공공연하게 만든 것이다.
퇴근 시간 이후에 메세지를 받은 사람은 일할 필요 없어. 그저 메세지를 보내는 사람이 일을 미루지 않도록 하자.
이게 우리가 내린 결정 사항이다.
나는 저녁 8시 이후가 되면 자동으로 휴대폰 알림이 꺼지도록 설정해 놓고 읽고 싶지 않은 메세지는 절대 읽지 않는다. 종종 메세지 내용이 궁금해서 읽더라도 답장하기 싫으면 다음날로 미룬다. 하지만 내가 보내고 싶은 게 있으면 마음대로 보낸다. 나 뿐 아니라 모든 팀원들이 그렇다.
부장님 멈춰!
결코, 우리 회사의 문화가 좋으니 권장한다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고 한 명 한 명이 분명하게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환경에서 근무하고 있다. 따라서 회사의 분위기와 업무 환경을 고려하고 무조건 이런 문화를 도입한다면 독이 될거다. 상하관계가 확실하고 경직된 기업 문화를 가진 회사라면 분명 보내는 사람만 편하고, 받는 사람은 불편할거다. 보내는 사람도 편하고, 받는 사람은 더 편하게 거절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 수 있는 자신이 있는 팀에게만 추천한다.
회사 분위기를 고려하지 않고 우리도 퇴근 시간 이후에 메세지 보내볼까? 싶어지는 부장님이 있다면, 내가 당신 회사의 직원들을 대신해서 말한다. 멈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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