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0일 토요일. 드디어 내일이면 3월의 마지막 날이다. 출발이 다가올수록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 경험해 본 일, 익숙한 일일수록 시간이 빠르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게 정말일까? 일본에 가서 보내는 시간들은 천천히 흐르면 좋겠다. 오늘은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사가야 하는 물건들을 사려고 시내에 나갔다. 당연히 일본에도 한국에서 살 수 있는 것들은 다 있겠지만 미용 용품은 한국에서 사가는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 마지막으로 이것저것 택배로 주문하고, 다이소도 들렀다.
엄마 생일 식사
점심은 산에들에라는 식당에서 만두전골을 먹었다. 무척 맑은 국물에 만두랑 야채가 들어간다. 김치, 단무지와 버섯, 청경채, 숙주, 배추는 무한리필 코너에서 자유롭게 리필해서 먹을 수 있다. 나는 야채를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라 야채를 잔뜩 떠와서 먹었다. 정말 배가 터지겠다 싶게 먹었는데 배의 반은 야채로 채운 것 같다. 나올 때는 정말 배가 불렀는데 금방 꺼져서 과자를 잔뜩 먹었다. 이래서 사람은 탄수화물을 먹어줘야 한다. 나는 탄수화물을 줄이면 바로 과자 먹는 걸로 채운다. 탄수화물을 적당량 이상 먹어줘야 과자 같은 군것질을 덜 한다.
그리고 농협 하나로마트에 가서 장을 봤다. 연근 브로콜리 들깨 무침 샐러드를 또 해먹고 싶어서 연근이랑 브로콜리를 사러 갔는데 당근이 너무 예쁘게 진열되어 있어서 사진을 찍었다.
해태 반성하라
롯데 슈퍼에도 들러서 새로나온 홈런볼 초코&소금우유랑 버터링 딥카페를 샀다. 뒤에 슬쩍 보이는 넛츠파이는 구운 코코넛, 아몬드, 피칸을 메이플 시럽이랑 조청 설탕으로 뭉친건데 기대만큼 맛있었다. 태국 같은 데 놀러가면 기념품으로 사오는 구운 코코넛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무조건 좋아할 맛.
홈런볼 초코&소금우유는 그냥 여태까지 나온 초코랑 우유랑 전혀 다를 게 없는 맛이었다. 그리고 저렇게 커다랗게 한 통으로 만들어놨지만 한 번 까서 혼자 다 먹을 수 있는 양이라는 것과 한 통에 4,000원이나 한다는게 빡침 포인트. 그리고 언제까지 플라스틱 용기에 넣어서 만들건지? 얼마든지 종이 용기에 넣어서 만들 수 있으면서. 제발 반성해!!!!!
그리고 버터링 딥카페도 18개입이라길래 18개입 언제 다 먹지? 하면서 열어봤더니 과자 하나를 한 봉지에 넣어놨다. 진심 제정신??? 누가 버터링을 한 번에 한 알(?)만 먹어? 비닐 쓰레기 다 어쩔거냐고... 진짜 환경 문제는 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기업이 솔선수범하지 않으면 답이 없다고. 환경문제 같은 큰 문제는 기업의 방식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개인이 선택하지 않게 만드는 건 너무 어렵다고. 기업이 얼마든지 개인의 선택에 개입할 수 있으면서, 더 나은 방향을 선택하도록 설계할 수 있으면서 대체 왜 이렇게 최악의 방식을 선택하는거임? 진짜 둘 다 해태걸로 샀는데 너무 쓰레기 같이 포장을 해놔서 화가 났다.
다이소 언박싱
스테인레스 싱크대 배수망
다이소에 갔는데 품절 대란이라던 싱크대 배수망이 보이길래 사봤다. 동글 동글해서 정말 음식물 쓰레기 건지기 좋게 생기긴 했다. 사이즈도 신기할만큼 딱 맞았다. 싱크대는 다 비슷한 사이즈를 쓰는걸까? 아직 집어넣어놓기만 해서 후기는 말할 수 없지만 엄마도 보더니 각진 곳이 없어서 편해보인다고 했다.
메이크업 브러시 세트 7종
예전에 분홍색 손잡이로 된 다이소 메이크업 브러시를 썼는데 가성비가 괜찮았던 기억이 나서 새로 사러 가봤다. 그때는 선택지가 그리 많지 않았는데 요즘은 다이소 미용용품이 괜찮다는 얘기가 돌기 시작하면서 완전히 대란이었다. 너무 종류가 많아서 고르기 힘들었다. 하나 하나 따로 따로 구매할까 하다가 귀찮아서 그냥 7종 세트를 골랐다.
브러쉬를 만져보고 살 수가 없어서 약간은 걱정을 했는데 꺼내보니 손등에 닿는 느낌이 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솔이 부드러웠다. 옛날에는 다이소에서 브러쉬를 잘못사면 돼지꼬리털로 만들었나 싶을만큼 거친 것도 있었는데 이제는 제품력이 제법 상향평준화 됐구나 싶다.
집에 나무로된 티스푼을 너무 잘 쓰고 있어서 그걸 가져가려고 했는데 모양이 너무 예쁜 스푼들이 있어서 새로 사버렸다. 옷칠 스푼 같은 건 일본이 더 잘 되어있을 것 같지만.. 그래도 사버렸다. 그냥 딱 보는 순간 이걸 쓰는 내 모습이 상상되는 그런 물건들이 있잖아... 그리고 이 스푼들 아무리 봐도 그립감이 사용감이 끝내주게 생겼잖아... 요거트 뜰 때, 케이크 뜰 때, 입에 넣을 때 딱 좋게 생겼다.
하지만 왼쪽 수저는 뜯어봤더니 오른쪽 위가 저렇게 조금 깨져있었다. 약간 속상했지만 아빠한테 보여줬더니 그냥 쓰라고 해서 그지? 내가 쓰다보면 금방 이정도 상처는 생길 것 같지? 하면서 그냥 쓰기로 했다.
솔직히 전혀 살 필요 없는 거 알지만 사버렸다. 나는 음료 마시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데 마신다면 반드시 빨대로 마시는 걸 선호한다. 특히 뚱바라고 부르는 단지 바나나 우유 마실 때 쓰는 작은 빨대를 제일 좋아한다. 나는 음료가 한 번에 왈칵 들어오는 게 싫고, 조금 조금씩 들어오는게 좋다. 그래서 작은 빨때도 깨물어서 마신다. 따라서 깨물어도 괜찮은 실리콘 빨대를 매우 선호하는데, 이 물병캡은 플라스틱 음료 용기 뚜껑에 빨대를 넣어도 안으로 들어가버리지 않게 설계되어 있다.
물론 플라스틱 용기에 든 물을 안 마시는게 베스트지만 가끔씩 마시게 되는 일을 아예 피할수는 없는 노릇이고, 나는 한 번 쓰면 몇 번이라도 재사용하고 버리기 때문에 이런 빨대를 넣을 수 있는 뚜껑이 있으면 너무 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음을... 사고 처박아두면 문제가 되지만 잘 쓰면 되잖아. 실리콘 빨대랑 세트로 늘 들고 다닐 예정이다.
립밥이 다 떨어져서 바세린을 샀다. 50ml가 2,000원이고, 100ml가 3,000원이어서 그냥 100ml 짜리로 샀다. 왜냐면 50ml도 그다지 휴대성이 좋아보이지 않았기 때문. 30ml는 돼야 휴대성이 좋을 것 같아서 애매한 걸로 살바에 그냥 큰 걸로 사버렸다. 그리고 이런 바세린 손 넣어서 쓰면 금방 오염돼서 다 버리고 싶어져서 조금씩 작은 틴케이스에 덜어서 사용할 예정이다. 그렇게 휴대성까지 잡기.
황당하지만 엄마가 사고싶다고 해서 샀다. 빙고 놀리는 용도로 한 번 사보고 싶다고 해서 ㅋㅋㅋㅋㅋ 모두가 조용히 수긍... 우리 빙고 장난감 한 손에 꼽히게 있는데 이런 거 하나는 사도 되잖아... 2년 넘게 키운 강아지 장난감이 한 손에 꼽히게 있는 정도면 진짜 요란 안 떨고 얌전하게 잘 키우는 것 같아...
저녁 먹기 전에 할아버지한테 전화를 걸었다. 아빠한테 할아버지 나 일본 가는 거 아셔? 하니까 니가 말 안 했으면 모르실거라고 허허. 그게 맞는데 그게 아니지 않아? 싶은 이 기분은 뭘까? 아빠의 아빠한테 아빠가 말해줘야 하는거 아니야?! 싶은 심정과 그래도 겸사 겸사 이렇게라도 전화 드려야지 싶은 마음이 공존. 정답이라는 건 없지만 아빠가 먼저 이야기하고 내가 전화드리는게 괜히 순서인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일단 냅다 전화를 걸었다.
엄마가 내일 오전에 전화드려 했는데 나는 오늘 하나라도 해결을 해놓고 싶은 마음이었다. 특히 할머니 할아버지한테 전화드려야지 같은 일은 미루지 않는게 장땡임. 전화드려서 저 당장 다음주에 일본에 가요. 가서 1년 살고 와요. 하고 폭탄 발언을 던졌는데 예상만큼 많이 놀라지는 않으셨다. 엄청 걱정하거나 심하면 가지 말라는 소리까지 들을 각오를 했는데 가서 많이 보고 많이 성장해서 오라고 해주심...
회사는 그만뒀는지 물어보시길래 지금 일하는 회사에서 계속 재택근무 형태로 일해줬으면 좋겠다고 해서 일한다고 했더니 잘됐다면서 무척 안심하신 눈치였다. 어른들은 무엇보다 일은 어떻게 하고 가는지가 신경 쓰일테니.. 그리고 특히 할아버지는 내가 재택근무로 2년을 넘게 일하고 있다는게 이해가 안돼서 만날 때마다 회사 안 잘렸는지, 월급 잘 나오는지 확인 하신다. 감사해요. 사랑해요 우리 회사.
아무튼 할아버지가 왔다 가라고 하셨는데 당장 다음주 출국이라 일정 상 무리일 것 같아서 허허 허허 허허 가능하면 갈텐데 아마 시간이 안 될 것 같아요 했더니 용돈이라도 보내줄테니 계좌번호를 부르라고 하셨다. 손녀한테 뭐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을 이해해서 한사코 거절하는 것보다 그냥 받아야겠다 싶어서 계좌번호를 불러드렸다. 근데 전화로 부르면서도 10자리가 넘는 숫자를 전화로 받아적는다는게 할아버지한테 쉬운 일이 아닐 것 같아서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잘 받아적으심. 젊은 사람들도 힘들어서 야 그냥 문자로 보내. 하고 마는데.
할아버지한테서는 상황을 파악하는 능력이나, 이해하는 능력 같은게 아직도 예리하게 살아있는 느낌을 받을때가 많다. 그리고 가끔 정확한 날짜 같은 걸 우리 부모님, 아니 나보다도 더 잘 기억하시는 거 보고 놀라심. 우리도 맨날 언제 간다고 했지? 하면서 똑같은 날짜 백 번 물어보는데... 그래서 아빠한테 할아버지는 치매 걸리실 일은 없겠다고 했다.
저녁에는 흑돼지를 양념해서 볶아먹었다. 사실 엄마는 그냥 후라이팬에 구워서 먹으려고 했는데 내가 양념된 걸로 먹고싶다고 조금 졸랐다. 이제 출국 앞두고 있다고 먹고싶은 거 실컷 먹으라면서 양념해줬다. 히히 출국 직전이라고 톡톡히 덕을 보는 중✌️ 양념은 엄마가, 볶는 건 내가. 토치로 쏴서 볶았는데 불맛 그득하니 너무 맛있었다.
저녁 먹으면서 아빠한테 또 옛날 이야기를 물어봤다. 할머니가 아빠가 초등학생 쯤 되던 시절에 국수랑 반주 정도를 파는 식당을 하셨고, 건물 1층에서 슈퍼를 하셨다는 건 들었는데 할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셨는지는 들어본 적이 없어서 무슨 일을 하셨는지 물어봤다.
아빠는 정말 말이 없는 타입이고, 가끔씩 어떤 화두나 주제에 대해서 의견을 물어보면 정리가 잘 안돼서 A에서 시작해 G에서 끝나는 편이다. 그런데 옛날 이야기를 물어보면 정말 눈앞에 그려지도록 생생하고 실감나게 이야기해준다. 그걸 20대가 된지 한참인 지금 깨닫다니. 예전부터 꾸준히 물어왔다면 좋았을 걸. 아빠의 어린 시절 어땠는지, 할머니 할아버지의 젊은 날이 어땠는지 지금 물어봐 놓지 않으면 나는 평생 알 수 없고, 이 세상 어디에도 그 기억이 그 기록이 남지 않을텐데.
편지 두 통을 썼다. 하나는 친가의 할머니 할아버지에게 드리는 편지고, 한 통은 외할머니에게 드리는 편지다. 고작 1년 떨어져 있는거고 코로나 때문에 명절을 함께 보내지 못한 게 처음도 아니지만 같은 한국에 있는거랑 외국에 있는거랑은 다를거라고 생각해서 편지라도 한 통 남기고 가고 싶었다. 편지를 써야지 써야지 생각한 게 몇 주째인데, 마음만 앞서도 바빠서 못 쓰면 어쩌지 하고 걱정했는데 다행히 오늘 편지를 전부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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