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3년째 유언장 쓰기를 미루고 있었다. 그래서 23년에는 올해에는 반드시 유언장을 완성시키고 말겠다는 것이 한 해의 목표였다. 죽기 위해서 쓰는 것도 아니고, 죽음을 대비해서 쓰는 것도 아니기에 3년이나 완성시키지 못하고 질질 끌고 있었을거다. 언젠가는 죽을텐데, 대체 언제인지 모르겠고, 지금의 나는 언젠가 죽는다는 것조차 믿기 힘들고 죽는게 뭔지 상상도 할 수 없으니까. 이런 나의 유언장 쓰기는 갑자기 온 가족의 이벤트가 됐다. 23년을 보내기 직전인 12월 우리 가족은 다같이 유서를 썼다.
유언장을 쓰게 만든 문장을 만나다.
내가 유언장 쓰기를 시작하게 됐던 건 한 문장을 만나고서였다.
정말 떠나야 할 땐 인사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게 인생이니까.
3년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나니 이제는 대체 어디에서 읽은 문장이었는지도 흐릿하다. 소설일까? 그것도 아니면 만화 속 대사일지도 모른다. 나머지는 모두 흐릿해지고 오직 이 문장 하나만 남아서 내 머릿속을 계속 돌았다. 정말로 떠나야 할 때는 인사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게 인생이라면, 나는 정말로 떠나지 않는게 확실한 오늘 인사를 준비해둬야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유언장을 쓸 시간이 딱 1시간만 주어진다면 엄마와 아빠에게 사랑한다, 낳아줘서 고맙다, 행복했다 정도만 남기는데 급급할거다. 하지만 하루가 주어진다면 다른 가족들도 떠오를거다. 나를 키워준 할머니, 할아버지와 외할머니 그리고 암 투병으로 힘들어하는 삼촌도 떠오른다. 그리고 일주일이 주어진다면 친구들 얼굴도 하나 둘 떠오를거다. 초등학생 때부터 쭉 만나온 내 절친, 스물이 넘어서 만났지만 이 친구를 빼면 내 삶을 설명할 수 없는 그런 친구들. 나는 나에게 많은 시간을 주고, 많은 사람들에게 인사를 남기고 싶었다.
내가 스스로 선택하는게 아니라면 죽음은 예기치 못하게 찾아오니까. 삶을 스스로 포기할 게 아니라서, 되려 삶에 대한 미련이 많아서, 남은 사람이 소중해서 나의 유언장 쓰기가 시작됐다.
3년 간의 유언장 쓰기
나는 3년 동안 초안만 썼다 지웠다를 반복하고 있었다. 나는 젊고, 건강하고, 삶을 사랑해서. 하지만 삶이란 당장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는 확률과 100년을 더 살지도 모른다는 확률을 둘 다 안고 살아야 하기에 어렵다. 그래서 그만두지도 못하고, 당장 내일 죽을사람처럼 붙들고 쓰지도 못하며 질질 끌었다. 3년 동안 나는 장례식에 온 모두에게 남기고 싶은 글, 엄마아빠에게 남기고 싶은 글 그리고 몇 명의 친구들 이름만 적어놓은 채였다. 그만큼 쓰고도 제법 많이 썼다. 하며 스스로를 위로하고 있었다. 완성되지 않은 채 인터넷에 비밀글로만 저장된 유언장은 의미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온가족의 이벤트가 된 유서 쓰기
식탁에 앉아서 평소처럼 시시콜콜한 수다를 떨고 있었다. 나는 23년을 보내면서 올해 하려고 목표한 것 중 딱 하나를 빼고는 다 달성했다며 그 하나가 3년째 끌고 있는 유언장이라고 했다. 늘 파격적인 언동과 제안을 일삼는 딸의 발언에 엄마 아빠는 놀라는 기색도 없었다. 덤덤한 반응에 나는 같이 유언장을 쓰자고 옆구리를 살포시 찔렀다. 어느쪽이 혼자 남든지 슬프고 외롭겠지만 외동딸인 나의 입장을 들먹여가며 설득했다. 유서는 정말로 남는 사람들을 위한 글이니까. 혼자 남을지도 모르는 나를 위해 미리 위로의 메세지를 남겨줬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서. 나의 유언장 쓰기는 삶을 아끼는 방법이고, 삶을 사랑하는 나만의 방법이었다. 또, 가족들과 남은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는 나의 언어였다. 그래서 나의 언어로 나를 위한 글을 남겨달라는 매달림이었다.
매주 돌아오는 유서 쓰는 날
그렇게 우리는 매주 일요일 오후 2시를 유서 쓰는 날로 정했다. 내가 3년이 걸려도 완성하지 못한 걸 보면 유서는 하루만에 뚝딱 완성되는 글이 아니었다. 23년이 지나가기 전에 끝내는 걸 목표로 주말마다 식탁에 유서를 들고 모였다. 첫 주에는 어떤 내용을 쓸지, 누구에게 쓸지를 정리하고 헤어지고, 그 다음 주에는 초안을 끄적대다 헤어졌다. 바쁜 일이 있는 사람은 빠지기도 했다. 중간 중간 어떤 내용을 적었는지 대략적인 공유도 했다. 엄마 아빠가 함께하니 내 유언장도 더 풍성해졌다. 삶에 대한 감상과 인사만 가득한 글에서 현실이 들어왔다. 내가 가진 재산을 누구에게 증여할지, 어디에 얼마나 기부할지, 연명 치료 여부, 장기 기증 여부, 강아지를 맡아줄 사람이 없을 경우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됐다.
엄마는 유언장을 쓰면서 원래도 이런 시간을 가지고 싶다고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덕분에 시작할 동력을 얻었다며 좋아했다. 하지만 복병은 아빠였다. 과묵한 성격의 아빠는 딸이 하고 싶다고 하니 쓰는건지,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억지로 쓰는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래서 또 옆구리를 쿡쿡 찔러 어때? 하며 물었다. 몇 번을 묻자 아빠는 그제야 딸 덕분에 이런 것도 써본다며 처음에는 비록 놀란게 맞지만 오히려 후회없이 살고, 떠나는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시간 같다며 좋아했다.
그렇게 12월 마지막 주 주말 우리는 흰 A4 용지를 들고 모였다. 유서가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공증인이 공증을 서주거나, 손글씨로 작성해야 한다고 하기에 종이와 볼펜을 들고 자리에 앉았다. 계속 길어지는 글에 두페이지를 가득 채우고서야 이름, 주소, 작성일을 적고 글을 마무리했다. 그리고 지문을 찍기 위해 인주를 찾아 온 집을 헤맸다. 하지만 분명히 어디선가 봤던 인주는 찾으려 하니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우리의 유서 쓰기는 지문 찍기만 남겨놓은채 마무리됐다.
유언장을 소중하게 뒤집어놓고 둘러앉아 어디에 숨겨둘건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미리 읽어도 의미가 없지만, 막상 발견하지 못해도 의미가 없으니까. 나의 유언장은 책장의 책들 뒷편에 살포시 뒀다. 적어도 십년, 이십년은 책장 뒷편에서 그렇게 오래 먼지가 쌓여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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