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르담 드 파리는 모든 스토리가 대사 없이 노래로 진행되는 송스루 뮤지컬이다. 따라서 여러 번 보지 않거나 스토리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는 사람은 뮤지컬을 쫓아가기 힘들 수 있다. 원작에 대한 이해가 있으면 등장인물들의 심리상태까지 다 이해하고 있는 상태고, 배경에 대한 지식이 있으니 훨씬 뮤지컬을 깊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뮤지컬을 보기 전, 혹은 본 후 원작 소설과 어떤 점이 다른지 궁금한 사람은 이 글을 읽어보길 바란다. 이번 글은 등장인물을 중심으로 차이점을 정리해 보았다.
스토리를 중심으로 읽어보고 싶은 사람은 아래 링크에서 읽어볼 수 있다.
나는 노트르담 드 파리 뮤지컬에서 가장 유명한 넘버인 '대성당들의 시대'로 노트르담 드 파리에 푹 빠져 프랑스 오리지널 내한 공연 뮤지컬, 한국어 버전 뮤지컬을 모두 봤다. 그걸 넘어서 원작 소설을 다양한 번역으로 읽어보기 위해서 민음사, 비룡소 등 출판사마다 책을 구해가며 읽었다. 노트르담 드 파리 원작은 워낙 내용이 방대해 국내에 들어온 번역본은 스토리 위주로 어느 정도 편집을 해서 들어온다. 그래서 번역본이 아니라 '편역본'이라 부른다. 민음사만 편집을 하지 않고 완역을 했는데, 그래서 민음사에서 나온 책에만 완역본이라 적혀있다. 그만큼 분량이 방대한데 나는 최대한 원작을 그대로 느끼고 싶어 민음사의 완역본도 구해서 읽었다. 편역본만 읽어도 뮤지컬에 나오는 등장인물보다 훨씬 방대하고 많은 인물이 나오는데 원작인 완역본까지 읽고 나니 책과 뮤지컬의 차이점이 더욱 확실하게 느껴졌다.
그랭구아르
그랭구아르는 뮤지컬에서 관객과 극을 연결해 주는 진행자 같은 역할을 맡아주는 시인이다. 따라서 우리는 뮤지컬을 보면서 무의식적으로 그가 중립적이고, 객관적이고, 공정한 사람일 거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소설에서 등장하는 그랭구아르는 한낱 인간이다. 강가에 앉아 아름다운 시를 쓰는 시인도 아니다. 늘 돈 걱정에 전전긍긍하며 돈 되는 연극 시나리오를 하나 써보려고 기웃대는 약간은 한량 같은 가벼운 사람이다. 나약하고, 야비하고, 찌질하기까지 하다. 나는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그랭구아르가 페뷔스 다음으로 가벼운 사람처럼 느껴졌다.
에스메랄다
에스메랄다의 인생은 소설에서도 뮤지컬만큼이나 억울하고 비참하다. 이 에스메랄다와 가장 가까운 '잘리'라는 염소가 있는데 이 염소는 뮤지컬에서 나오지 않는다. 이 염소 잘리는 아주 똑똑한데, 그런 이유로 마녀로 몰리기도 한다. 에스메랄다는 소설에서 생각보다 입체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뮤지컬에서는 클로팽이 에스메랄다를 업어 키운 것처럼 끈끈한 우애가 느껴지는데 소설에서는 그런 우애도 생각보다 드러나지 않는다. 뮤지컬 넘버인 '보헤미안'이 암시하는 수준의 스토리도 소설에서는 나오지 않는다. 다만 뮤지컬에서 나오지 않는 과거가 등장한다.
자루 수녀 귀뒬
뮤지컬에서는 생략된 인물인 자루 수녀 귀뒬. 그녀는 끔찍이 아끼던 딸을 납치당한다. 귀뒬에게 남은 유일한 딸의 흔적은 작은 신발 한 짝이다. 집시가 자신의 딸을 훔쳐갔을 거라 짐작만 하며 평생 집시를 증오하며 지하방에 스스로 틀어박혀 고통 속에 산다. 그리고 창밖으로 집시가 지나가면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고 욕설을 내뱉는다. 집시 중에서도 가장 증오하는 상대는 에스메랄다다.
한 편 에스메랄다는 아주 어린 아기였던 시절에 집시들에게 납치되어 집시들 손에 키워진다. 집시들은 에스메랄다의 신발 한 짝을 주머니에 싸 목걸이로 만들어 성인이 되는 날 열어보라고 한다. 하지만 에스메랄다는 겨우 16살에 프롤로에 의해서 교수형에 처해진다.
귀뒬은 에스메랄다가 교수형에 처해지기 직전 에스메랄다의 목걸이에 든 신발 한 짝을 통해서 에스메랄다가 자신의 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이미 에스메랄다는 이미 끌려갔고, 결국 교수형에 처해진다. 귀뒬은 교수형에 처하는 에스메랄다를 미친 듯이 붙잡다 사람들에 의해 밀려나고 땅에 머리를 부딪혀 죽는다.
귀뒬은 뮤지컬에서 아예 삭제된 인물이다. 하지만 에스메랄다의 어린 나이와 살아온 배경을 짐작하고 뮤지컬을 보면 재미도 배가 될 수 있지만 아마도 경악이 배가 되리라 생각한다.
잘리
잘리 역시 뮤지컬에서는 생략된 동물이다. 소설에서는 실 가는데 바늘 가듯 언제나 에스메랄다의 곁을 지킨다. 에스메랄다의 해맑음, 상냥함이 잘리와 함께할 때 더욱 잘 설명된다. 잘리는 목 주변과 발이 금색인 아주 똑똑한 염소다. 몇 월, 며칠, 몇 시인지를 구분해 낼 줄 안다. 또한 에스메랄다가 두 달을 공들여 가르친 덕분에 글자 카드로 '페뷔스'를 만들 줄 안다. 글자 카드로 '페뷔스'를 적을 줄 아는 영특함 때문에 에스메랄다를 마녀로 몰게 된다. 물론 상황이 수상하기는 하다. 페뷔스는 칼로 찔리고, 염소는 글자 카드로 페뷔스를 만든다니.
남편이지만 사랑이 없는 관계며, 연인도 아닌 그랭구아르가 이 염소 잘리에 강한 집착을 보인다. 에스메랄다가 마녀로 몰려 죽음을 당할 때 그랭구아르는 에스메랄다를 버리고 잘리만 조용히 데리고 사라진다. 그렇게 잘리만이 그랭구아르에 의해 목숨을 건진다.
클로팽
클로팽은 뮤지컬에서 초반부터 등장해 에스메랄다에게 조언을 건네고, 그랭구아르를 처형하려다 에스메랄다와 결혼시키고, 반란에서 장렬하게 전사하는 등 제법 비중이 있는 캐릭터로 그려진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큰 비중이 없다. 에스메랄다를 쫓아 발다무르 캬바레에 온 외부인인 그랭구아르를 그냥 죽이려고 하다가 그와 결혼하겠다는 사람이 있다면 살려야 한다는 사실을 겨우 떠올리는 역할 정도만 뮤지컬과 비슷하다. 소설에서는 낫으로 사람과 말의 다리를 아주 잘 베다가 전사한다. 에스메랄다를 거두어 여동생처럼 키우며 지내는 모습은 그려지지 않는다. 뮤지컬에서 추가된 설정이다.
페뷔스
페뷔스는 뮤지컬에서 더 괜찮은 남자로 그려졌다. 소설에서는 더 가볍고 쓰레기 같은 남자다. 뮤지컬에서는 하다못해 사랑하는 두 여자를 두고 진심으로 갈등하고 고뇌하는 듯이 그려진다. 하지만 원작 소설에서는 그 정도 고민도 하지 않는다. 제대로 된 사랑이라는 걸 모르고, 할 줄도 모르는 바람둥이다. 약혼녀인 플뢰르도 사랑하지 않고, 에스메랄다는 이름조차 제대로 외우지 못하고 한낱 하룻밤 상대 정도로만 여긴다. 소설 속에서 주변인들과 에스메랄다가 잠자리를 약속한 발다무르 캬바레로 올지 안 올지를 두고 내기를 거는 수준의 대화를 나눌 정도로 가벼운 남자다. 이 모든 비극의 시초가 되고 중심에 있는 인물이지만 에스메랄다는 교수형에 처해 목숨을 잃는데 반해 페뷔스는 명성에 금 하나 가지 않는다. 정말 가해자는 잘 살고 피해자는 숨 죽여 살거나 목숨을 잃게 되는 끔찍한 결말은 이 시절부터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플뢰르
소설에서는 뮤지컬만큼의 비중도 차지하지 않는 인물이다. 다만 소설에서 나오는 설정으로는 페뷔스와 사촌지간이다. 당시에는 귀족들 간의 근친상간이 흔했던 시절이라 페뷔스의 사촌 누이로 그려내었다.
프롤로
프롤로는 이 구역의 최고로 미친놈이다. 뮤지컬에서는 콰지모도를 거두고 에스메랄다를 사랑한 주교 정도로만 그려진다. 더 정확하게 설명하면 그는 젊은 부주교다. 소설에서 그는 아주 젊을 때부터 의학부터 연금술까지 갖가지 지식을 섭렵하는 지식인으로 나온다. 루이 11세를 꾸준하게 만날 정도의 영향력을 가진 부주교다. 하지만 에스메랄다를 만나고 부주교로써의 삶이 무너진다. 아주 유령같이 창백하고 음침한 인물로 그려지는데 성격도 그만큼 음침하다. 소설에서 세상에서 미워한 수많은 사람들을 두고 자신이 유일하게 사랑한 에스메랄다만을 죽인다는 독백이 나온다. 이 문장에서 프롤로의 심리를 엿볼 수 있다.
장
장은 뮤지컬에서 삭제된 인물로 프롤로가 사랑하는 남동생이다. 장은 언제나 술에 취해서 페뷔스와 어울리며 한심한 삶을 산다. 프롤로는 동생인 장이 공부를 하기를 원하지만 장은 오직 돈이 필요할 때만 프롤로를 찾아간다.
장은 집시와 거지들이 노트르담 성당을 점령하는 날 사다리를 들고 용감하게 노트르담 성당에 찾아간다. 그리고 성당 위에 올라섰다가 콰지모도의 손에 날아가 성벽에 부딪혀 머리가 터져 죽는다.
콰지모도
뮤지컬의 주인공인 콰지모도. 소설에서는 초반에 잠시 등장했다 중반이 넘어갈 때까지 나오지 않는다. 주인공이 소설의 중반까지도 모습들 드러내지 않아서 당혹스러웠다. 이 인물의 외모는 소설에서 아주 상세하게 나온다. 뮤지컬에서는 얼굴에 검은 선 몇 개 긋고, 빨간 머리털, 등에 큰 혹을 달고 절뚝이며 걷는 꼽추 정도로만 등장한다. 하지만 소설에서는 한쪽 눈이 애꾸고, 등에는 앞에서도 보일만큼 커다란 혹을 어깨에 달고 있고, 안짱다리에, 넓적한 두 발, 괴물 같은 두 손, 몸통은 가로와 세로가 똑같을 만큼 넓적하다고 그의 외모를 설명한다. 부모마저도 낳자마자 버릴 정도로 추악한 외모를 가진 콰지모도. 프롤로가 그를 주워 글을 가르치고 종 치기로 기르는데, 종을 치면서 귀마저도 멀어버린다. 하지만 아주 날렵하다. 이 날렵함은 뮤지컬에서도 벽을 타고 다니는 모습에서 조금은 드러난다.
소설 속에서도 콰지모도는 애처롭게 에스메랄다를 사랑한다. 약간 놀라웠던 건 은근히 사람들의 관심을 즐기는 모습도 보인다는 것이었다. 노트르담 성당은 성역이기 때문에 이곳에서는 죄인도 체포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콰지모도는 에스메랄다를 들쳐 매고 노트르담 성당으로 들어가는데 이 모습을 보고 사람들이 환호하자 세 번이나 다시 모습을 드러내면서 환호성을 즐긴다.
공연에서는 에스메랄다가 콰지모도를 직접 마주하는 모습이 종종 보이는데 소설에서는 쳐다도 볼 수 없을 만큼 끔찍한 존재로 그려진다. 콰지모도는 에스메랄다에게 자신의 모습이 끔찍하면 눈을 감아도 좋다고 말하며 스스로 고통스러워 하는 장면도 나온다.
콰지모도는 흉측한 마음을 가졌지만 진실한 사랑을 할 줄 아는 존재로 일컬어지는 경우가 많다. 나는 노트르담 드 파리 원작 소설에서 제대로 된 사랑을 할 줄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것 같다. 이렇게 폭력적이고 파괴적인 게 사랑일까? 자신을 무너뜨리거나 타인을 망가뜨리는게 사랑일까? 이런 걸 사랑이라고 부른다면 내가 제대로 된 사랑을 모르는 게 분명하다.
진정한, 진실한 사랑이 무엇이지는 알 수 없지만 원작 소설을 읽고 보면 뮤지컬이 한층 풍성해지는 것은 분명히 알 수 있다. 뮤지컬을 이미 본 사람도, 분명 재미가 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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