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본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발급받아 워홀 출국 준비를 하고 있다. 단, 퇴사를 하지 않고 워킹홀리데이를 간다. 일본에 워킹홀리데이를 가서도 한국에 있는 회사와 주 5일, 재택근무를 하는 조건으로 계속 일하기로 했다. 워홀을 준비하면서 했던 고민과 도대체 어떻게 회사와 합의를 해 회사 생활과 워킹 홀리데이 병행이 가능하게 되었는지를 적어보겠다.
내가 내일 죽는다면 무엇을 가장 후회하게 될까?
나는 20대 초반에 회사 생활을 시작해 올해로 5년 차 디자이너가 됐다 요즘은 대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일을 시작하는 경우가 드물다 보니 5년 차 디자이너가 된 지금도 나와 비슷한 나이대의 팀원을 만나기가 힘들다. 다들 회사에 입사하기 전에 유학도 가보고, 세계 여행도 마음껏 다니며 세상을 경험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일하는 게 즐거우면서도 마음껏 놀고, 세상을 경험하는 시간이 없었던 것에 대한 아쉬움과 갈증을 마음 한편에 끊임없이 가지고 있었다.
사람의 인생은 내일 끝날지 100년 뒤에 끝날지 알 수 없어서 여럽고도 재밌다. 그래서 나는 늘 100년 뒤를 준비함과 동시에 내일의 죽음에도 준비하는 마음가짐으로 산다. 나는 내일 죽어도 후회 없는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에 꽤 자주 내일 내가 죽는다면 무엇을 후회할지에 대해 고민하곤 한다. 그리고 내가 100년 뒤까지 산다고 하더라도 무릎과 허리가 버텨주는 지금 미리 하고 싶은 일을 해둬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꼭 가보고 싶은 여행지가 전 세계에 있고, 해외를 돌아다니며 세상을 경험해보지 못하면 후회할 거라는 생각을 아주 오래 해왔다. 그리고 커리어가 쌓이면 쌓일수록 이 커리어를 포기하기가 아까워 점점 더 어려워질 거라 판단했다.
때는 지금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젊고 건강할 때 해외에 나가 고생이란 고생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인생에는 돈, 건강, 시간이 모두 주어지는 때가 잘 없다. 5년이나 쉬지 않고 돈을 벌며 고생했으니 지금 회사를 그만두면 드디어 인생에 아주 잠깐 뿐일 돈, 건강, 시간이 모두 주어지는 때가 생기는 거다.
일본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다
처음에는 어느 나라로 워킹홀리데이르 가야 할지부터 고민하기 시작했다. 웬만한 나라는 나이제한이 만 30세였다. 제법 여유가 있었다. 하지만 일본 워킹홀리데이는 나이제한이 만 25세였다. 내가 안 가면 안 갔지, 나이 제한으로 못 가게 될 수도 있다 생각하니 갑자기 오기가 생겼다. 그리고 20대 초에 일본어 공부를 해뒀던 것도 아까웠다. 일본어도 다시 한번 공부해 볼 겸 가까운 나라인 일본에서 첫 워킹홀리데이를 시작해 보자 하고 결정했다. 일본에서 외국인으로 살아보며 문제해결능력을 기르고 30세 전에 영어권의 다른 나라로도 또 워홀을 떠나보리라 각오를 다지며.
처음 워킹홀리데이 비자 취득을 준비할 때는 당연히 회사를 퇴사하고 간다고 생각했다. 준비를 시작하던 시점에는 창의적인 일보다 기계적인 업무들을 진행하며 업무에 대한 흥미도가 한창 떨어지고 있었고, 입사 동기들이 갑자기 우르르 퇴사하며 심적으로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워킹 홀리데이 비자의 합격 여부와 관계없이 퇴사하고 싶은 마음이 들던 시기였기에 되려 워홀 비자 취득을 준비하는 시간이 회사 생활을 버틸 수 있게 도와줬다.
일을 하면서 일본어능력시험인 JLPT N2(2급) 자격증을 따고, 비자 준비를 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또 하려고 하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오히려 새로운 목표가 생기니 되려 일에도 활기가 돌기 시작했다.
새로운 프로젝트가 주어지며 일이 재밌어지다
처음 워킹홀리데이를 가자고 생각한 건 23년 2월이었다. 나는 2월부터 일본어 공부를 시작해 7월에 일본어능력시험 자격증을 따고 4분기인 10월에 비자를 신청할 계획이었다. 모든 계획을 마치고, 7월에 있을 자격증 시험에도 응모해 둔 6월. 나는 갑자기 신제품 기획에 투입됐다. 신제품 무드보드 제작부터 제품의 기획, 패키지 디자인, 상세페이지 디자인, 촬영까지 신제품의 모든 과정에 참여할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 신제품을 준비하며 나는 제품과 회사에 다시 푹 빠지기 시작했다.
내가 고민하고 발로 뛰어다니는 만큼 신제품은 만족스럽게 나왔다. 내가 고집을 부려서 밀고 나간 요소들이 제품의 가장 매력적인 요소들이 되었다. 나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경험은 엄청난 성취감을 주었다.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기획자, 대표와 긴밀하게 소통하며 합을 맞춰나가는 과정도 너무나 즐거웠다.
존재만으로도 나의 포트폴리오가 될 이 제품을 회사에 두고 나는 퇴사할 수 있을까? 팀원들과 이렇게 손발을 맞춰놓고 퇴사한다면 팀원들과 회사는 괜찮을까? 더 깊은 고민이 시작됐다.
워킹 홀리데이 비자에 합격하다
그럼에도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고 판단한 나는 계획대로 10월에 4분기 일본 워킹홀리데이 사증 신청에 접수했다. 일단은 비자가 나와도 비자를 발급받은 시점으로부터 1년 안으로만 출국하면 되니, 일단은 비자를 신청해 보고 고민하자 싶었다. 그리고 어차피 떨어질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번에 비자 신청을 미루면 나이 제한으로 인해 영영 일본으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날 수 없게 되기에 나는 과감히 밀어붙였다. 그렇게 23년 11월 20일, 나는 4분기 워킹홀리데이 합격 안내 문자를 받았다.
대표님에게 1대 1 면담을 신청하다.
12월, 나는 대표님과 단둘이 점심식사를 했다. 점심을 먹으면서 대표님에게 이번 한 번에 모든 걸 전달할 수 있다는 기대 없이 그냥 하고 싶은 말을 솔직하게 전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고민을 꺼내어 보여주면서 인생을 먼저 살아본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고 싶다는 자세로 내가 어떻게 하면 좋을지 물었다.
나는 삶에서 후회가 없고 싶고, 지금이 그 시기인 것 같다. 지금 세상을 경험할 기회를 놓치면 후회할 것 같다. 지금의 나에게는 세상에 나가서 시야를 넓히는 경험이 필요하다. 하지만 나에게 신제품을 믿고 맡겨주신 덕분에 디자이너로써 큰 성취감을 느꼈고, 많이 성장했다. 또 회사에 큰 애정이 생겼다. 함께 일하는 팀원들과의 협업으로 손발도 척척 맞춰놓은 이 시점에 떠나려고 하니 너무 아쉽다. 하지만 비자를 땄으니 출국은 해야 한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빨리 일본에 다녀와 다시 이 회사에 입사하고 싶은 마음까지도 든다.
나는 이렇게 솔직하게 나의 마음을 대표님에게 전달했다. 대표님 역시 내가 만든 제품을 내가 가장 잘 팔 수 있고, 이 시점에 나만큼의 이해도를 가지고 제품을 고객에게 전달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판단했다. 또, 본인 역시 해외 유학으로 성장한 경험을 가지고 있기에 워킹 홀리데이로 많은 걸 배우게 될 거라 생각해 워홀을 떠나는 것에 자체에 대해서는 되려 추천한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회사를 떠나서 워킹 홀리데이를 가야 하는가는 의문을 가졌다. 대표님은 되려 내게 내가 일본에 있기 때문에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있을 거라 말해주셨다. 일과 삶은 그렇게 딱 잘라서 나눌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일과 성장, 삶과 일, 삶과 성장 그 모든 게 함께 이루어질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나는 워킹 홀리데이와 재택근무 병행으로의 첫 발을 내디뎠다.
회사에서 대체될 수 없는 존재가 되자
나는 100% 재택근무도, 워킹홀리데이와 근무 병행도 회사의 제안으로 이루어졌다. 이런 결과에 도달하기 위해서 가장 절대적으로 필요한 건 회사에서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되는 것과 회사에서 대체될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나는 회사 내의 유일한 디자이너로 대체되기 어려울 만큼 많은 일을 기꺼이, 기쁘게 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또 있다. 대표, 팀원 회사 내의 모든 구성원과 신뢰 관계를 아주 두텁게 구축해 놓는 것이다. 나에게 주어진 일을 정말 충실하고 성실하게 해낼 것. 내가 어떤 사람인지 구성원들에게 잘 알릴 것. 그 외에는 진심으로 회사와 계속 일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그 마음을 잘 전달한 것이 전부다.
사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전체의 반에 불과하다. 나머지 반은 회사에서 결단을 내려줘야 한다. 회사에서 네가 어디에 있든 여전히 우리와 함께 일할 수 있고, 또 잘할 수 있다고 나에게 보여준 신뢰에 나는 내가 왜 이토록 회사를 떠나기 싫어 망설였는지 다시 한번 느꼈다.
그리고 이 일은 나에게 엄청난 동기부여가 됐다. 이전에는 디자이너로써 좋은 커리어를 쌓고자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면 이 일을 계기로 회사를 위해서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싶다는 마음이 싹트기 시작했다. 나는 이렇게 믿고 밀어주는 회사와 함께 성장하기 위해서 더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싶다는 욕심이 마음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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